/일러스트=김영석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이모(37)씨는 팬데믹 이후 2년 가까이 주로 집이나 집 근처 거점 근무지에서 일하고 있다. 한 달에 사나흘 정도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에만 본사 사무실로 출근한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회사가 발 빠르게 원격 근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사무실 출근을 제한한 덕분이다. 최근 방역 수칙이 대폭 완화되면서 이씨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매일 회사에 출근하는 생활이 재개될 것 같다는 걱정이다. 그는 “출퇴근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하루 2시간 이상 줄어 만족도가 크게 올라갔는데 요즘 회사에서 슬슬 정상 출근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일상 회복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이씨처럼 ‘주 5일 사무실 출근’ 재개를 두려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이런 마음을 아는 기업들은 섣불리 출근을 강제했다가 업무 만족도가 저하되고 이직 행렬이 이어질까 걱정이다.

◇팬데믹 후 확산된 재택근무

전국적으로 보면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경험하지 못한 직장인이 더 많다. 직무 특성상 대면 업무를 할 수밖에 없거나 재택근무에 맞는 시스템을 단기간 내 갖추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데믹 이전과 비교하면 재택근무는 대기업과 일부 IT 기업, 공공기관 중심으로 매우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재택근무자 수는 114만명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9만5000명) 대비 12배 급증했다. 전체 임금 근로자 중 재택을 하는 비율은 아직 4.2%에 불과하지만 직원 수 300명 이상인 기업으로 한정하면 17%가 재택근무를 경험했다. 정보통신 부문 종사자는 그 비율이 25%나 된다.

기업 문화가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선진국에서는 재택근무가 더 보편화됐다. 퓨처포럼이 지난해 11월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호주 등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1만73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더니 재택근무 없이 사무실 출근을 계속한다는 직장인은 30%에 불과했다. 하이브리드 근무(출근과 재택 혼용)를 하는 직장인은 6개월 전 조사보다 12%포인트 늘어난 58%에 달했다.

◇출근 재개 움직임에 직장인 울상

그러나 일상이 회복된다는 것은 근무 방식이 코로나 이전으로 복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방역 수위 완화에 맞춰 국내외 기업들은 비(非)대면 근무를 다시 대면 근무 중심으로 재편 중이다. 재택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렸던 포스코 그룹이 이달 초 재택근무를 종료한 것을 기점으로 주요 기업들은 사무실 인력을 늘리는 방향으로 사규를 손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사내 확진자가 나올 경우 8m 이내 근무자까지 재택근무를 하게 했으나 최근 거리 기준을 2m로 좁혔다. 사업장 출입 시 필수였던 온라인 문진표 작성도 생략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는 재택근무를 50% 이상 유지하지만 국내외 출장과 교육·회의, 업무 외 활동 등의 지침은 완화했다. 공식적으로 지침을 손대지 않은 다른 기업들도 내부적으로는 재택 비중을 줄이는 것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한 금융회사 임원은 “정상 출근으로 돌아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분석하며 연착륙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다.

재택근무를 계속 이어갈 것처럼 보이던 미국의 주요 테크 기업들도 속속 사무실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 애플이 지난 11일 2년여 만에 사무실 출근을 시작했고, 구글과 메타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MS)도 자유롭게 재택근무 하던 것을 멈추고 지난달 말 이후 사무실 출근 비율을 주 2~3일까지 높이고 있다.

재택의 시대가 저무는 모습에 무(無)통근, 무야근, 무회식이라는 이른바 ‘3무’ 체제를 만끽하던 직장인들의 낯빛은 부쩍 어두워졌다. 통근 시간을 절약해 취미 활동을 하고, 교통비와 식비를 아낄 수 있던 생활에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 금융권 직장인 한모(31)씨는 “4주에 한 번 일주일씩 재택근무를 해왔는데, 요즘 동료들 사이에 ‘재택이 곧 종료될 것 같다’는 소문이 자자해 심란하다”고 했다. 미국 원격 근무 설루션 전문 업체 아울랩스가 미국 직장인 2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전체의 40%가 “회사에서 재택을 보장해준다면 10%의 급여 삭감을 수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재택 효과 놓고 노사 간 동상이몽

기업들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니다. 대면 회의의 필요성과 소속감 등을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재택근무 비중을 낮추고 싶지만 직원들의 반발이 거세질까 걱정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31국에서 3만1000여 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경영진 절반은 “앞으로 사무실 근무를 요구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직원 중 절반은 오히려 원격이나 하이브리드 근무로의 전환을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원격 근무에 대해 경영진과 근로자의 동상이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원격 근무의 생산성을 두고도 경영진의 54%는 “악화됐다”고 평가한 반면, 직원의 80%는 “이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국내 대기업 임원은 “재택근무를 하며 창업해 가게를 운영하던 직원이 적발되기도 했다”며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문화를 전반적인 평가·관리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권 부장은 “재택근무를 오래 하다 나온 직원이 이어폰을 꽂은 채 근무하는 모습을 보고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기업이 무작정 대면 근무를 고집할 수는 없을 거라는 전망이 많다. 재택근무가 주요 복지로 자리 잡은 만큼 재택근무가 어려운 회사는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25만명의 구직자가 등록된 헤드헌팅기업 커리어앤스카우트가 경력직 구직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75%는 “재택근무 가능 기업으로 이직할 것”이라고 답했다. 숙명여대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는 “MZ세대는 사무실이든 집이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근무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기를 원한다”며 “근무 형태를 유연하게 운영하는 회사가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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