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야구장 표가 1800원이라는데 진짜에요?”

프로야구가 개막한 이달 초 야구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물가가 올라 야구 표 한 장에 2만~3만원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다. 그런데 1980년대 수준인 1800원짜리 표가 나왔다는 소식에 놀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어떻게 책정된 가격일까.

답은 인공지능(AI)에 있다. 경남 창원에 연고를 둔 프로야구단 NC 다이노스는 모회사인 엔씨소프트 ‘NLP 센터’가 개발한 AI가 정하는 티켓 값을 적용한다. 지난해만 해도 이 야구장 입장권 종류(주중·성인 기준)는 6개였다. 좌석 앞에 테이블이 있는지 없는지, 내야인지 외야인지에 따라 차이를 뒀을 뿐이다. 그런데 올해 티켓 종류는 85개에 이른다. 또 경기마다 가격이 서로 다르다. 가장 값이 싼 외야 133블록의 경우 지난 5일에는 1800원이었는데, 다음 날에는 6125원, 그 다음 날에는 1만원에 가격이 책정됐다.

AI는 지난 2년간 축적된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한 뒤 이 같은 요금을 매겼다. 경기가 펼쳐지는 요일과 예상되는 날씨, 상대팀과 선발투수, 전적, 승률, 과거 상대팀과 경기에서의 티켓 판매량 등이다. 예를 들어 김광현이나 양현종 같은 정상급 투수가 선발 등판하거나, 지역 라이벌인 롯데 자이언츠나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는 티켓 값을 올린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내리는 식이다. NC다이노스 관계자는 “가장 관중을 많이 끌어들이면서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AI가 찾는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품·서비스 가격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유동적으로 바꾸는 전략을 ‘다이내믹 프라이싱(dynamic pricing)’이라고 하는데, AI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격 책정을 AI에 맡기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반찬 값을 올릴지 내릴지, 평소 자리가 남아도는 스포츠 경기 표를 어디까지 낮춰 관객을 채우는 게 이익이 될지 등을 정하는 것이다.

◇1800원짜리 야구표 만들어낸 AI

기업들이 각종 상황에 따라 다른 가격을 정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조조·심야 영화 할인, 성수기에 더 비싼 항공권 등이 그러한 예다. 그런데 AI가 등장하면서 훨씬 더 정교하고 세밀하게 가격을 올리고 내릴 수 있게 됐다. 가령 지난 2년간 상품 판매 데이터를 입력한 뒤 이를 분석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가격을 수시로 바꾸는 식이다. 경쟁 업체의 가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해 가격 책정에 반영하기도 한다.

동원디어푸드식품전문 쇼핑몰 ‘더반찬&’ 수제 반찬이나 밀키트, 정육 등 일부 제품의 가격을 AI가 정한다. 시간대별 주문율과 생산량, 재고량 등이 입력되면 AI가 할인율을 정하는 식이다. 이 업체가 판매하는 ‘바질치킨 샐러드 파스타’의 경우 정가가 5900원인데, 지난 6일에는 4150원에 판매했다. 전체 생산량의 40% 정도가 재고로 남았고, 주문율도 떨어지다 보니 AI가 30% 정도 값을 깎아야 한다고 제시한 것이다. 같은 날 판매된 양념소불고기도 이 같은 원리에 따라 정가 6900원에서 5500원으로 할인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음식이 버려지는 비율을 낮추는 동시에 최대한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가격을 정할 때 AI 도움을 받는다”며 “아직은 초기 단계지만, 앞으로는 강수량 같은 정보도 입력해 정확성을 높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해외 업체들은 AI로 가격을 책정하는 데 더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곳이 미국 최대 온라인 상거래 회사 아마존이다. 아마존 상품 가격은 하루 250만번 이상 바뀌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별 소비자 성향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AI가 분석한다. 또 경쟁업체의 가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가격을 바꾼다. 이를 통해 최저가 상품을 판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구매율이 높은 제품은 가격을 소폭 올린다.

택시공유업체 우버의 AI 프로그램에는 승객의 과거 호출 데이터와 함께 현재의 날씨와 해당 지역 특성, 도로 상황과 시간대 등이 입력된다. 만약 특정 지역에 대형 스포츠 경기 등이 벌어진다면 AI가 이에 맞게 요금을 올린다. 코카콜라와 존슨앤드존스 등도 AI를 가격 책정에 이용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AI는 서로 다른 상점의 하인즈 케첩 가격이 오르고 내리는 것이 조미료 전체 매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도 파악한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는 숙박료를 책정하는 데 AI를 활용하는 호텔이 늘고 있다. 경쟁업체의 숙박 요금과 예약 상황을 수집하고, 과거 객실 판매 기록을 분석해 가장 적당한 가격을 제시한다. 과거에는 직원이 수시로 인터넷을 검색해 경쟁 호텔의 가격을 알아낸 뒤 이보다 낮게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을 썼다.

AI가 만들어 낸 야구 티켓 가격

◇AI가 사람 차별한다면

그렇다고 AI가 정하는 가격이 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데이터에 의존해 당장의 판매량을 극대화하는 데만 치중하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기업 입장에서 손해가 될 수 있다. 가령 지난 5일 NC다이노스가 1800원짜리 티켓을 내놓자 342개 좌석 가운데 121명이 이 표를 샀다. 야구장 내 시설 유지나 인건비 등을 고려하면 ‘재고떨이’나 다름없는 가격이다. 이런 가격에 관중이 익숙해지면 티켓 값이 올랐을 때 야구장을 찾지 않을 수도 있다. NC다이노스 관계자는 “당장은 손해일 수는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관중이 찾도록 미래에 투자하겠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AI를 통한 가격 책정이 보편화되면 소비자의 최대 무기인 가격 비교가 사실상 무력화된다. AI가 소비자의 소득이나 성별, 연령대, 인종 등에 따라 가격을 정할 경우 사회적 문제가 될 소지도 있다. 아마존은 지난 2000년 매출 신장을 위해 충성도가 높은 고객에게 가격을 올리고, 구매 이력이 없는 고객에게는 물건값을 낮춘 것이 발각돼 불매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사과했다. 국내 한 개발업체 관계자는 “무제한 가격을 내릴 순 없기 때문에 AI에 가격 하한선을 설정해 놓고 문제가 될 수 있는 다른 요소들도 걸러내고 있다”며 “AI는 보조적인 수단이고, 결국 최종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것은 인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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