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를 공격 전후로 원유부터 밀가루까지 모든 원자재 가격이 급등했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치솟았고, 석탄과 곡물 가격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에너지 수출 상위국가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올라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러시아는 천연가스와 석탄, 원유 수출 3대 국가다. 밀 수출 금액도 1위를 기록하는 나라다. 우크라이나 역시 전세계 밀 수출량의 8%를 책임지는 5위 수출 국가다(2020년 기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네온가스와 팔라듐, 크립톤(Kr)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많이 생산된다. 구리와 니켈, 알루미늄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가 요리할 때 많이 쓰는 해바라기씨유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세계 수출의 46.9%와 29.9%를 차지한다. 두 나라 충돌이 국제 원자재 가격을 뒤흔드는 것을 넘어 공급망 위기를 악화시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원자재 해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은 서둘러 다른 생산자들에게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유럽과 한국, 일본은 물론 인도 등은 호주와 아세안 국가들에 노크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상대적으로 운송 문제에 자유롭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는 천연가스와 팜유를, 인도네시아는 석탄, 니켈, 구리, 팜유, 천연가스 등 다양한 원자재가 풍부하다. 필리핀은 니켈 생산량 2위 국가고, 태국은 농수산물과 금, 원유를 생산한다. 이들 나라 기업들은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생산기업들의 판매가를 높여 매출과 이익에 모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세안 지역의 대표적인 관련 원자재 기업들을 보자. 인도네시아 석탄 광업 기업은 인디카 에너지(PT. Indika Energy Tbk), 인도 땀방라야 메가(PT. Indo Tambangraya Mega Tbk), 부킷 아삼(PT. Bukit Asam Tbk), 아다로 에너지 인도네시아(PT. Adaro Energy Indonesia) 등 수십개 기업들이 있다. 같은 광업·에너지 산업이라 해도 주력광물에 따라 구분되는데 금과 구리 광업은 메르데카 코퍼 골드(PT. Merdeka Copper Gold Tbk), 니켈은 국영기업 아네카 땀방(PT. Aneka Tambang Tbk) 브라질 발레가 투자한 발레 인도네시아(PT. Vale Indonesia), 하룸 에너지(PT. Harum Energy) 등이 대표 주자다. 주식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지난달 21일부터 25일 사이에 인도 탐방 라야메가 주가는 15%, 하룸 에너지 주가는 14% 상승했다.

태국의 최대기업인 PTT는 에너지 공기업인데, PTTEP(PTT Exploration and Production)라는 자원탐사·개발을 담당하는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 두 업체는 모두 주가가 올랐지만 폭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 지난달 21일부터 28일 사이 PTT 주가는 1.9% 오르는데 그쳤는데, PTTEP는 7.5%나 상승했다. PTTEP는 기회로 작용해 수혜를 입을 것이 확실하지만, PTT의 경우 유가상승으로 인해 다운스트림(정제된 원유와 천연가스 등을 판매) 부문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팜유는 라면이나 과자에 들어가는 데 이번 위기 이전부터 꾸준히 상승했다. 최대 수출국가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다. 팜유 농장을 운영하는 말레이시아의 사임 다비 플랜테이션(Sime Darby Plantation Bhd) 지난 한달 동안 주가가 약 38%나 올랐다. 인도네시아의 최대 재벌인 시나르 마스(Sinar Mas)그룹과 살림(Salim)그룹, 아스트라 그룹 모두 산하에 팜오일 생산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아세안 국가들은 지리적 특성에 따라 농수산업이나 임업, 광업이 발달해 있다. 이들 산업은 전체 경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수출 기여도도 높다. 이들 나라에서는 제조업과 서비스 그리고 원자재 산업이 서로 균형을 이룬다. 따라서 각종 위기에 찾아와도 비교적 잘 견딘다. 예를 들면 제조업이 일시적으로 흔들리더라도 1차 산업 무역수지가 좋아지면서 경제를 떠받쳐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산업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까? 해답은 단순히 광물 수출에 그칠게 아니라 반제품이나 완제품 등 부가가치를 높은 상품으로 수출하는 전략으로 바꾸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니켈 원광을 그대로 다른 나라에 수출하는 게 아니라, 최소 한 차례라도 가공해서 외국에 파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2009년 신광업법을 발효해 제련공장 설치와 같은 수출 전 가공 단계를 아예 의무화했고, 2020년에는 외국인투자자 지분 비율을 49% 이하로 제한했다. 올해 1월에는 국내시장에 우선 제공을 의무화하면서 석탄과 보크사이트, 구리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도 팜원유에 수출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광물과 광석 등에는 수출허가 요건을 걸었다. 자원을 무기화한다는 비난이 있지만, 수출국 입장에서는 자원의 가치를 높인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기업과 정부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서 핵심소재인 니켈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인도네시아 니켈을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스미토모 메탈 마이닝(Sumitomo Metal Mining Co.)은 발레 인도네시아의 보유지분을 국영기업 인알룸(Inalum)에 매각하는 대신 술라웨시 채굴권을 늘렸고, 제련소 건립 신규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 중국의 칭산그룹은 니켈 채굴과 가공, 스테인리스강 생산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인도네시아 모로왈리 인더스트리얼 파크에 직접 투자를 시작했고, 합작회사도 설립했다. 또 중국 닝보 리젠드와 인도네시아 하리타 그룹은 힘을 합쳐 니켈과 코발트 생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상품은 전량 중국으로 수출할 예정이다. 중국 CATL과 테슬라도 인도네시아 현지생산공장을 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우리나라도 움직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에서 배터리를 생산하기 위해 공장 건립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한 발짝, 아니 두 발짝 늦었다. 사업환경을 이유로 아직 필리핀에는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간, 지역 내 충돌이 빈번해지는 것을 대비해 공급망을 안정시키고, 수입선은 다변화해야한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 그러나 눈앞에 비상사태가 벌어질 때까지는 그 중요성을 실감하지 못한다. 시야를 넒게 보고, 규제를 타고 넘는 전술을 잘 구사해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와 아세안의 동반성장을 기치로 내건 신남방정책이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영경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 겸 말레이시아 선웨이대학 겸임교수. 말레이시아 교육부와 거버넌스 연구소 등 현지 기관과 다수의 대기업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여러 미디어와 강연을 통해 아세안 비즈니스 환경과 기업 사례를 소개하는 등 아세안 경제·산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래의 성장 시장 아세안’, ‘아세안 슈퍼앱 전쟁’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