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대표적인 자선단체 중 하나인 피델리티 자선기금은 올 들어 11월까지 1억5000만달러(약 1770억원) 상당의 가상 화폐를 기부금으로 받았다. 가상 화폐를 받기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많은 액수로, 지난해 가상 화폐 기부액(2800만달러)의 5배가 넘는다. 북미 최대 가상 화폐 기부 전문 온라인 플랫폼인 더기빙블록 역시 지난달 30일 ‘기부의 화요일(Giving Tuesday)’ 하루에만 240만달러(약 28억원) 상당의 가상 화폐를 모았다. 지난해 대비 583% 늘어난 액수다. 가상 화폐를 기부받은 비영리단체 수도 지난해 대비 839% 늘어난 1017곳에 달했다.

올해 가상 화폐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가상 화폐를 통한 기부 문화도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가상 화폐는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만큼 누구나 기부 내역을 투명하게 살필 수 있고, 익명 기부도 기술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피델리티 자선기금이 최근 내놓은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가상 화폐 투자자의 45%가 1000달러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일반 주식 투자자는 33%만 1000달러 이상 기부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현재 전체 투자자의 13%가 포트폴리오에 가상 화폐를 보유하고 있고, 20%는 내년 가상 화폐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며 “디지털 자산은 앞으로 자선 활동의 중요한 자금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가상 화폐 기부가 활성화된 또 다른 배경은 절세 혜택이다. 미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가상 화폐 거래에서 발생한 시세 차익에 대해 소득 수준에 따라 최고 37%의 세금을 부과한다. 이른바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다. 가상 화폐로 피자나 커피를 결제해도 이 세금이 붙는다. 하지만 기부하면 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또 1년 이상 장기 보유한 가상 화폐를 기부할 경우 소득공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피델리티 자선기금 설문조사에서도 가상 화폐 기부자 54%가 기부 동기로 ‘세금 혜택’을 언급했다.

국내에서도 가상 화폐 기부가 움트고 있다. 가상 화폐 거래소 지닥을 운영하는 블록체인 기업 피어테크는 지난 4월 1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했다. 디지털 자산을 법정 기부금 단체에 기부한 첫 번째 사례였다. 같은 달 또 다른 가상 화폐 거래소 코빗 역시 장애인의 날을 맞아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1억6000만원 상당의 이더리움을 기부했다. 국내 가상 화폐 기부는 앞으로 더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오는 2023년부터 250만원 넘는 가상 화폐 수익에 대해 20%의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만큼 절세 혜택을 노린 기부가 이어질 거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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