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차세대 격전지로 꼽히는 시장은 헬스케어(건강관리) 분야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페이스북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이 지난해 헬스케어 분야에 총 37억달러(약 4조3400억원)를 투자했으며, 올해 중반까지 31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고 분석했다. 빅테크들이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할 때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이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다. 고성능 심전도 센서를 탑재한 ‘애플워치’로 전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을 장악한 애플을 필두로 헬스케어에 특화된 웨어러블 제조사 ‘핏비트’를 21억달러에 인수한 구글, 작년 8월 헬스케어용 손목 밴드 ‘헤일로’를 출시한 아마존 등 빅테크 대부분이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그간 잠잠했던 페이스북도 심장 박동 감지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를 내년 여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이다.

①. 구글이 인수한 피트니스 전용 웨어러블 제조기업 핏비트가 최근 출시한 스마트워치 모델 ‘차지5’. ②. 프랑스 스타트업 바이오세레니티가 개발한 신경질환 진단용 웨어러블 기기 ‘뉴로노테’. /각 사

IT(정보 통신) 기업들이 웨어러블 기기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데이터에 있다. 의료 분야에서 기반이 약한 만큼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대규모 생체 데이터를 확보·분석하는 방식으로 병원과 제약 회사를 추월하겠다는 심산이다. 애플은 작년에만 3400만대를 판매한 애플워치를 통해 단기간에 막대한 데이터를 뽑아내고 있다. 마침 신종 코로나 대유행으로 비대면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헬스케어에 특화된 웨어러블 기기 수요도 커졌다. 시장조사 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츠는 2020년 250억달러(약 29조3400억원) 규모인 의료용 웨어러블 시장 규모가 연평균 22.9% 성장해 2027년엔 다섯 배 이상 증가한 14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의료 현장까지 진출한 웨어러블

헬스케어용 웨어러블 기기는 발전을 거듭해 이젠 웬만한 의료 기기 뺨치는 수준에 도달했다. 심전도와 혈압, 혈중 산소 포화도, 기초 대사량, 체지방량, 근 골격량, 체수분량 등 과거 전문 의료기기로 측정해야 했던 생체 정보는 이제 웨어러블 기기에 탑재되는 센서를 통해 수집 가능하다. 애플워치는 심방세동같이 탐지가 어려운 부정맥을 잡아낼 수 있어 미국 FDA(식품의약국)에서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다. 애플은 미국 제약사 존슨앤드존슨과 함께 애플워치의 심전도 센서를 활용, 뇌졸중을 예방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③. 심전도 센서가 탑재된 애플의 스마트워치 모델 ‘애플워치’. ④. 국내 스타트업 스카이랩스가 개발한 세계 최초 반지형 심장 모니터링 기기 ‘카트원’. ⑤. 아마존이 작년 출시한 헬스케어용 스마트밴드 ‘해일로’. /각 사

해외에선 이미 웨어러블 기기가 원격 진단 수단으로 의료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미국 뉴욕 기반 스타트업 나노웨어가 개발한 ‘심플센스’는 붕대처럼 어깨와 가슴을 감싸는 천 형태의 웨어러블 기기로, 수십억 개의 나노센서를 활용해 심박 수와 혈압 등 85종의 생체 데이터를 기록하고 AI(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보고서 형태로 알려준다. 현재 미국 병원 14곳에서 만성 심부전 환자 500명 이상에게 이 기기를 처방했고, 수술 후 회복 상태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파리에 있는 스타트업 바이오세레니티는 집에서 뇌전증(간질)과 알츠하이머 같은 신경 질환 징후를 감지해내는 모자 형태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 ‘뉴로노테’를 개발, 미국과 프랑스 환자 3만여 명에게 적용 중이다. 뇌의 전기적 활동을 측정하는 뇌파도(EEG) 방식을 적용해 신경질환을 진단하거나 약물의 효과와 안정성을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미국 나노웨어가 개발한 의료용 웨어러블 ‘심플센스’.

◇한국 기업도 가세... 개인 정보 보호는 숙제

국내 의료용 웨어러블 산업은 이제 시작 단계다. 그간 국내에서 의료용 웨어러블 기기는 환자의 의료 데이터 규제 때문에 활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2019년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도입되면서 의료용 웨어러블 시장의 빗장도 풀렸다. 혁신적 신기술을 지닌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 출시될 수 있도록 규제를 유예 또는 면제해 주는 제도다.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 휴이노가 개발한 시계 형태의 심전도 측정 장치 ‘메모워치’가 대표적이다. 메모워치는 규제 샌드박스 적용 1호로 임상을 마치고 작년 5월 국내 최초로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됐다. 의료 기기 인증을 넘어 의사들이 메모워치를 처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삼성전자의 심전도 측정 앱과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 스카이랩스가 개발한 세계 최초 반지형 심장 모니터링 기기 ‘카트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헬스케어 웨어러블 시장이 차세대 핵심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장밋빛 미래만 보장된 건 아니다. 시장이 커지면서 개인 정보보다 민감한 생체 데이터 유출 문제가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미국 웹사이트 관리 업체 ‘웹사이트플래닛’은 “헬스케어용 웨어러블이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개인 피트니스 정보 6100만건이 인터넷에 유출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애플의 헬스케어 전용 앱 ‘헬스킷’과 구글의 핏비트 등 각종 웨어러블 기기로 수집된 개인 정보가 암호화도 되지 않은 채 인터넷에 떠돌아다닌 것이다. 예레미아 파울러 웹사이트플래닛 보안 연구원은 “유출 데이터에 이름과 생년월일, 체중, 키, 성별, 지리적 위치 등이 포함돼 있었다”며 “웨어러블 기기로 수집한 생체 데이터는 더 정교해진 사이버 범죄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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