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사과’여도 맛있다면, 소비자에게 ‘사과(apple-ogize)’할 이유가 없습니다.”

2015년 창업한 미국 ‘임퍼펙트 푸드(Imperfect Foods)’는 농산물 시장의 ‘외모지상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이 회사가 매주 한 번 고객에게 배달해주는 사과와 오렌지, 토마토 같은 과일과 채소는 상처가 있거나 모양이 흉해 상품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질 위기에 처한 수십 종의 농산물을 매입해 30~50% 저렴하게 팔아 성공을 거뒀다. 현재 이 회사의 고객 수는 35만명에 달하고, 지난해 매출은 5억달러(약 5550억원)에 육박했다. 필립 벤 CEO(최고경영자)는 “편리하게 배송을 받으면서 (환경적) 지속가능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식자재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라고 했다.

최근 임퍼펙트 푸드 같은 ‘못난이 농산물’ 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약진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 사태로 전 세계 실물 경제가 한동안 극심한 침체를 겪은 후 양질의 값싼 제품을 찾는 ‘가성비 소비’가 늘어났고, 여기에 친환경 이슈 등에 따른 ‘가치 소비’ 움직임까지 더해진 것이 주된 요인이다. 과소비에 의한 환경 오염을 최소화하자는 ‘리퍼브(Refurb·약간의 흠집이 있는 물건을 손질해 싸게 파는 것) 소비’의 한 형태다. 이런 트렌드는 음식을 넘어 패션, 가전, 가구 등 다른 영역으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친환경 트렌드 힘입어 飛上

임퍼펙트 푸드와 함께 이른바 ‘어글리 푸드(Ugly food)’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 기업이 ‘미스핏츠 마켓(Misfits Market)’이다. 지난해 거래량(7700만파운드)과 고객 수(40만명 이상)가 전년 대비 5배가 될 만큼 폭발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임퍼펙트 푸드가 올해 초 9500만달러(약 105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자, 미스핏츠 마켓도 지난달 2억달러(약 222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미스핏츠 마켓은 11억달러(약 1조2220억원)의 기업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으며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반열에도 올랐다.

맥주 제조 과정의 부산물로 생반죽 쿠키를 만드는 도프(Doughp), 버려진 농산물에서 영양소를 추출해 젤리를 만드는 라이프 리바이벌(Ripe Revival) 등도 소비자 반응이 좋다. 일본에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가공식품이나 테이크아웃 음식점의 남는 조리 식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플랫폼 ‘타베루프’, ‘타베테’ 등이 인기다. 한국에선 기존 유통업체들이 ‘못난이 농산물’의 판매를 적극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난 2월 한국소비자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 10명 중 6명(60.5%)은 못난이 농산물을 산 적이 있고, 이 중 95.5%는 “또 사겠다”고 답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농장에서 기른 뿌리채소 파스닙(parsnip). 당근과 비슷하면서 단맛이 강해 ‘설탕 당근’이라고 불린다. 이 중 모양이 고르지 못한 것은 월마트나 홀푸즈마켓 같은 대형 수퍼마켓에 납품 못 하고 못난이 농산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통업체로 넘겨진다. /미스피츠마켓

애물단지였던 못난이 농산물이 각광받게된 데는 이유가 있다. 지구온난화로 홍수, 가뭄, 대형 화재 등 자연재해가 심각해지면서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에 따르면 상품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음식물은 연간 13억t, 전 세계 음식물 소비량의 3분의 1에 달한다. 이러한 음식 폐기물로 배출하는 탄소량은 44억mt(미터톤)에 달하고, 음식 폐기물 처리에 지구 전체 담수의 20%가량이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통 전 영역으로 확산 중

이처럼 버려질 것을 살려 가치를 부여하는 소비, 즉 ‘업사이클링(up-cycling)’의 트렌드는 다른 분야로 확산 중이다. 가전과 가구 업계에서도 성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상 흠집이 있거나 구매자의 단순 변심 등으로 반품된 상품을 손질해 재판매하는 ‘리퍼브 매장’이 인기다. 업계는 지난해 리퍼브 제품을 포함한 국내 중고시장 규모가 2008년 대비 5배가량 늘어난 20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한다.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하는 ‘패스트 패션’의 유행으로 너무 많은 옷이 버려진다며 중고 의류 사업에 뛰어든 스타트업도 있다. 미국의 중고 의류 판매 플랫폼(서비스) ‘스레드업(ThreadUp)’에는 여성과 어린이 옷을 중심으로 3만5000여개 브랜드가 거래되고, 매일 4만5000여개의 새 옷이 올라온다. 지난해 매출액은 1억8600만 달러(약 2070억원)로 2년 새 40%나 늘었다. 올해 나스닥 상장도 계획 중이다.

스레드업은 “매년 미국에서 버려지는 옷이 767만t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이 중 95%는 다시 입어도 문제가 없는 상태라는 게 업계 평가다. 시장 분석 업체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중고 의류와 신발, 액세서리 수요는 2019년 280억달러(약 31조원)에서 2024년 360억달러(약 40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황선경 수석연구원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세대)를 중심으로 착한 소비 등 신념에 부합하는 소비 문화가 확산되면서 온라인 플랫폼 중심의 중고경제(Second-hand economy)는 계속 높은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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