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식료품 배달 업체 고릴라스(Gorillas)의 슬로건은 ‘Faster than you(당신보다 더 빨리)’다. 주문에서 배달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10분 이내’다. 지난해 5월 베를린과 쾰른에서 서비스를 시작해 급속도로 인기를 얻자 플링크(Flink)라는 경쟁 업체가 등장했다. 플링크의 배송 목표 시간은 ‘10분 미만’. 앱으로 주문을 마치고 요리 준비를 하다 보면 금세 식재료가 도착한다.

우리가 새벽 배송의 편리함에 감동하고 있을 때, 유럽에선 ‘10분 배송’ 혁명이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초고속 식료품 배송 업체’의 등장이다. 동남쪽 터키부터 서북단 영국까지 10여개 기업이 이 업종에 뛰어들면서 시장 선점을 위한 치열한 고지전(高地戰)을 벌이고 있다. 쿠팡의 로켓 배송이 빨라야 반나절은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가히 ‘음속 배송’이라 부를 만하다. 사소한 행정 처리도 한 달은 각오해야 했던 유럽에서 상상할 수 없던 광경이다.

◇‘주문 후 10분’이면 도착

지난해 5월 고릴라스의 등장 이후 위지(Weezy), 잽(Zapp), 플링크(Flink), 겟패스터(GetFaster), 카주(Cajoo), 디자(Dija) 등 유사 업체가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해 서비스를 하고 있다. 보통 10분 내외, 길어도 20분 내에 식료품을 배달해 준다. 영국 디자는 심지어 “10분 내 배송에 실패하면 3개월간 배송료를 받지 않는다”는 ‘10분 배달 보증'까지 한다.

이들 서비스가 신종 코로나로 외출을 자제하는 유럽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자 투자금도 쏟아지고 있다. 고릴라스는 창업 열달 만에 3억달러 이상을 투자받으면서 이른바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의 신생 기업) 대열에도 합류했다. 독일 스타트업 사상 최단 기록이다.

뒤이어 터키 게티르(Getir)가 올 1월 런던에 이어 네덜란드, 프랑스 등 서유럽으로, 이탈리아의 에베를리(Everli)는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으로, 체코·헝가리 기반의 스타트업 로흘리크(Rohlik)은 독일과 루마니아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의 고퍼프(goPuff)는 최근 영국 업체를 인수해 유럽 상륙에 나섰다.

독일의 초고속 식료품 배달 업체인 고릴라스(Gorillas)의 여성 배달원과 배달 자전거. 지난해 베를린과 쾰른에서 서비스를 시작해 올해 1월엔 뮌헨에도 진출했다. /고릴라스

◇‘다크 스토어’ 덕분에 빨라졌다

식료품 배달 스타트업들은 배달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자체 배달망을 구축했다. 온라인 배달 전용 매장인 ‘다크 스토어(dark store)’를 도심 곳곳에 설치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자전거·오토바이 배달원이 5~10분 거리에 있는 골목을 누빈다. 고릴라스는 유럽 12도시에 40여 주문처리센터(fulfillment center)를 확보했고, 위지는 런던 시내에만 다크 스토어를 15개 갖고 있다.

덕분에 사업 초기 30분 안팎에서 시작한 스타트업들의 배달 시간 경쟁이 10분 미만까지 내려왔다. 이들은 초고속 배달을 위해 다크 스토어당 3000개 안팎에 이르는 품목을 미리 준비해 보관한다. 최근엔 고객 선호에 맞춰 식료품뿐 아니라 기타 일상 잡화도 취급하면서 일종의 배달 전문 편의점처럼 진화하고 있다.

◇코로나에 고집 꺾은 유럽인들

식료품 배달은 유럽에서 매력이 없는 사업이었다. 신선 식품은 보관 기관이 짧기 때문에 폐기 가능성이 커 재고 관리가 까다롭고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특히 보수적 유럽 소비자들에게 남이 골라 준 물건을 받아야 하는 식료품 배달은 ‘난센스’였다. 국제 포장 업체 앰코(Amcor)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유럽 지역 소비자들 열에 여섯(61%)이 식료품을 직접 보고 신선도를 확인한 뒤 구입하는 쪽을 선호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이런 진입 장벽이 모두 무너졌다. 방역을 위해 시장과 수퍼마켓이 문을 닫는 상황이 벌어지자 온라인 식료품 주문이 급증했다. 벤처캐피털 노스존은 “삼시세끼 필요해 구매 빈도가 높은 식료품은 온라인 배달업에 완벽한 분야”라고 했다.

◇수퍼마켓 몰락의 전조일까

기존 수퍼마켓들이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국 최대 수퍼마켓 테스코(Tesco)와 세인즈버리(Sainsbury’s)는 직접 온라인 상점을 운영했고, 독일 알디(Aldi)는 음식 배달업체 딜리버루와, 프랑스 카르푸(Carrefour)는 우버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10분 배송은 고사하고 밀려드는 수요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배송이 연착하는 일이 빈발하면서 고객을 붙잡는 데 실패했다.

업계에선 초스피드 식료품 배달 업체들이 수퍼마켓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란 우려와 함께,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란 시각이 공존한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신종 코로나 이후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스타트업들이 급증한 공급량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수퍼마켓의 보완재는 될 수 있어도, 대체재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 비해 크게 낮은 마진율(3분의 1 수준)과 다크스토어의 임대료도 부담이다. 플링크에 투자한 체리벤처스의 크리스티안 미어만은 “(수년 내에) 인수 합병 같은 통폐합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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