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목사님’을 꿈꿨던 청년은, 지금은 화장품 관련 스타트업 대표가 됐다. 디밀의 이헌주 대표는 “어릴 적부터 영향력 있는 사람을 꿈꿨는데, 요즘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어릴 적 우연히 간 교회에서 그는 영웅을 봤다. 좌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수많은 신도들. 그는 ‘목사님’이 되기를 꿈꾸며 신학교를 졸업했고, 미국 텍사스로 신학 유학도 갔다. 그런데 교회에서 일할수록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돌이켜보면 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교회에선 권력 욕심을 품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전공을 경영학으로 바꾸고, ‘사업하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했죠.”

귀국한 그는 느닷없이 화장품 관련 스타트업을 세웠다. 목소리는 나긋나긋한데, 얼굴엔 수염이 덥수룩하다. 그의 이름은 이헌주(38), 현재 ‘디퍼런트밀리언즈’(디밀)의 대표다. 지난달 현대홈쇼핑과 아모레퍼시픽그룹으로부터 총 150억원 규모의 투자(시리즈A)를 유치했다.

디밀은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 회사다. MCN은 유망 유튜버를 발굴·육성하고, 유튜버들이 계속 영상을 만들 수 있도록 광고대행·사업연결 등을 지원한다. 연예인에게 소속 기획사가 있다면, 유튜버에겐 MCN이 있는 셈이다. 디밀은 화장품 등 ‘뷰티’ 영역에 집중하고 있다.

화장품 회사로선 유튜브를 통한 광고·홍보를 놓칠 수 없게 됐다. 밀레니얼 세대 중엔 화장품을 사기 전 뷰티 유튜버의 후기 영상부터 살피는 사람이 많기 때문. 사진은 디밀이 후원하는 뷰티 유튜버 '챙잇뷰티'의 방송화면 캡처. /디밀

‘뭐든지 영상이 더 편하다’는 밀레니얼 세대 중엔 화장품을 사기 전 자신이 구독하는 뷰티 유튜버의 후기 영상부터 살피는 사람이 적잖다. 화장품 회사로선 유튜브를 통한 광고·홍보를 놓칠 수 없게 됐다. 지난 8일 서울 압구정 디밀 사옥에서 만난 이 대표는 “국내 판매 중인 화장품 브랜드가 2만개를 넘으면서 믿을만한 ‘영상 후기’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며 “딱 맞는 제품을 추천하는 ‘큐레이션’ 영상을 계속 쌓아나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자기 삶을 전하는 콘텐츠가 성공한다

화장품 브랜드가 노출하고 싶은 제품을 디밀에 의뢰하면, 디밀은 제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유튜버에게 영상 제작을 제안한다. 디밀과 협력 중인 유튜버는 300명 정도. 이미 국내외 브랜드 500여곳의 광고·홍보 영상을 3500건 이상 만들었다. 디밀은 지난 4월 자체 화장품 쇼핑몰 ‘디바인’을 런칭하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매장도 열었다. 디밀의 작년 매출은 40억원 수준, 올해는 8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디밀이 지난 4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애비뉴엘 1층에 연 '디바인' 매장. /디밀

-왜 이런 사업을 시작했나.

“미국 유학 시절 가발·화장품 체인인 ‘뷰티 서플라이’에서 4년간 일했다. 사장님이 한인 교포여서 학생 신분이었지만 일자리를 얻었다. 그 때 화장품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았다. 환불을 막으려면 제품뿐 아니라 불만에 찬 고객들과 소통하는 법도 배워야 했다. 간혹 말싸움으로 번지면 옷을 벗는 고객들도 있다. 그럴 땐 경찰부터 불러야 한다.”

-디밀은 콘텐츠 제작 때 어떤 일을 하나.

“콘텐츠의 구성이나 내용은 유튜버가 알아서 한다. 디밀은 사업 연결에 집중한다. 광고 매출은 대략 유튜버가 70%, 디밀이 30% 정도 가져간다.”

-어떤 콘텐츠가 잘 통하나.

“시청자들은 유튜버의 외모·전문성보다도 콘텐츠의 독창성이나 유튜버의 개인적 이야기가 담기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한 유튜버는 화장품을 소개하면서 결혼 살림하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시청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떻게 유튜버를 발굴하나.

“구독자 수 외에도 ‘좋아요’ 개수나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본다. 구독자와 적극 소통하고, 신뢰·애착 관계를 잘 쌓아가는 채널이 결국 성공하더라. PD·작가 등 전문가가 붙어 콘텐츠가 화려해질수록 반응은 시들하다. TV로 보는 영상을 유튜브로 보고 싶진 않은 것 같다.”

디밀은 유튜버 홀로는 하기 힘든 사업 연결, 광고 대행 등의 업무를 맡는다. 최근 뷰티 유튜버 ‘재유’가 연예인 하하의 메이크업을 해주는 프로그램을 디밀과 기획, 이를 유튜브 방송으로 내보냈다. /디밀

◇'이타적 이기주의'가 스타트업의 경쟁력

이 대표는 2017년 디밀 창업 후 1년간 홀로 일했고, 이듬해부터 직원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8년 중순 직원 한 명이 유튜버 20명 중 18명을 데리고 나가 독립하는 일이 벌어졌다.

-상처가 컸을 것 같다.

“‘왜 이 사업을 하는지' 서로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이후 조직문화에 대해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화장품 회사가 노출하기 원하는 제품을 디밀에 의뢰하면, 디밀은 그 제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유튜버에게 연결해준다. /디밀

-디밀은 어떤 조직을 추구하나.

“‘이타적 이기주의자'로 꾸려진 조직을 꿈꾼다. 스타트업 대표는 직원들이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게, 조직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한다. 이기주의만 좇는 사람을 걸러낼 수 있어야 조직의 경쟁력이 쌓인다.” (디밀 사옥 한쪽 벽에 걸린 ‘이타적 이기주의자 체크리스트’ 포스터엔 ‘팀원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다’ ‘고민을 나누면 기회가 된다’ 등이 적혀있었다.)

스타트업은 주로 VC(벤처캐피털)로부터 투자 받지만, 디밀은 동종업계 대기업으로부터 받았다. 이 대표는 “돈 외에도 사업 시너지를 많이 고민했다. 대기업 인프라를 통하면 다양한 사업 확장이 가능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현대홈쇼핑 측은 “실시간 온라인 판매 등 디지털 분야에서 협력할 게 많을 것”이라고 투자 사유를 설명했고, 아모레퍼시픽그룹도 “디지털 마케팅 시너지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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