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사막 한가운데 회색 컨테이너 10동이 2층 건물처럼 올라갔다. 낮 기온이 최고 40도까지 올라가는 열사의 땅이지만,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면 초록빛 농장이 펼쳐진다. 섭씨 18~20도 기온이 상시 유지되는 가운데 양쪽 벽에는 샐러드용 잎채소와 허브 여러 종이 자라고 있다. LED(유기발광다이오드) 인공조명으로 광합성을 하고, 사물인터넷(IoT) 시스템으로 온도와 습도를 원하는 대로 조절한다. 한국 스타트업 엔씽이 수출한 스마트팜(farm·농장) ‘플랜티 큐브’의 모습이다. 엔씽은 컨테이너 모듈형 스마트팜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스타트업이다. 엔씽은 컨테이너 조립(모듈)식 수직공장, 사물인터넷 기반 자동화 운영 시스템, 식물 생장 LED, 순환식 수경 재배 등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박람회 CES 2020에서는 스마트시티 분야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이 회사의 김혜연(35) 대표는 지난 27일 Mint와 만나 “엔씽의 스마트팜으로 채소를 재배하면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100배 늘고, 물 사용량을 98%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엔씽의 스마트팜‘플랜티 큐브’의 내부 모습. 바깥 기후와 상관 없이 컨테이너 안에서 수경 재배가 가능하다. /엔씽

엔씽은 최근 120억원 규모의 투자도 유치했다. 이번 투자에는 유진투자증권·삼성벤처투자·우아한형제 등이 신규 투자사로 참여했다. 누적 투자 금액은 180억원이다. 엔씽은 이번 투자 유치로 500억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았다.

◇식량 안보 중시하는 중동 시장 노린다

엔씽이 진출하려는 중동 지역은 열악한 기후 환경으로 식량 자급률이 10%도 안 된다. 신선 채소와 과일을 대부분 유럽산 수입품에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로 국제 물류길이 막히자 중동 국가들이 ‘식량 안보’의 필요성을 느끼며, 아예 ‘농장(스마트팜)’을 외국서 사오려 하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 크롭원 등 스마트팜 업체들은 수년 전부터 중동 진출을 선언하고 대형 스마트팜 건설 계획을 내놓고 있다. 김 대표는 “미국형 스마트팜 모델은 수천평 규모의 창고형 공장을 지어서 대량 생산하는 식”이라며 “넓은 건설 부지와 수천억~수조원의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하다 보니 대부분 MOU(양해각서)만 체결한 청사진 단계가 많다”고 했다.

김혜연 엔씽 대표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본사에 있는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상추와 온도 제어용 앱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엔씽은 성공의 가능성을 빨리 눈으로 보여주는 전략을 택했다. 작년 7월 아부다비에 먼저 컨테이너 두 동을 보내 설치했다. 사막의 여름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후 실증 사업차 8동을 더 보내 직접 로메인 상추 등 샐러드용 잎채소를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재배된 채소는 현지 호텔과 고급 레스토랑 등에 납품된다. 김 대표는 “아부다비의 고급 식자재 마트를 가보면, 상추가 100g에 5000원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약 7배 비싼 가격에 팔린다”며 “이들에게 ‘자국산 신선 채소’는 획기적인 상품”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5년 내 중동서 1조원 매출이 목표”라고 했다. 컨테이너 스마트팜 1만동을 수출해야 나오는 액수다. 그는 “중동 스마트팜 시장이 3조원 정도로 추산되는데, 점유율 30%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있는 엔씽의 스마트팜‘플랜티 큐브’의 모습. 콘테이너 여러 동을 이어 붙인 모듈형 농장이다. /엔씽

◇"흉년도 풍년도 없는, 균일한 품질의 작물 생산 목표"

대학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혜연 대표는 엔씽 창업 전 쇼핑몰 제작, 연예인 매니저 등 특이한 이력을 거쳤다. 농업에 눈을 뜬 계기는 2010년 외삼촌이 경영하는 농자재 업체서 근무하며 우즈베키스탄 파견을 나가 농장을 경영해보면서부터다. 그는 IoT를 결합한 스마트팜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목표는 농작물의 공산품화다. 흉년도 풍년도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기후와 외부 환경에 좌우돼 품질과 가격이 들쑥날쑥한 농작물을 스마트팜이라는 ‘공장’ 속에서 균일한 품질로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2014년 엔씽을 창업했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으로 원격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 화분에 집중했다. 엔씽은 농작물과 재배 환경 관리를 위한 IoT 시스템과 부품을 이때 다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2015년에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스마트 화분 제작 비용 10만달러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스마트화분서 스마트팜으로 본격 사업을 전환하려던 차에 위기가 왔다. 김 대표는 “업종을 바꾸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전환기에 드는 비용과 조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다”고 했다. 자금난으로 20명이던 직원을 8명까지 줄여야 했다. 그는 신용보증기금의 퍼스트 펭귄 프로그램에 지원해 5억원을 받아 지금의 엔씽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현재 경기도 용인에 컨테이너 스마트팜 15동을 세워 연간 30t의 잎채소를 생산하고 있지만, 매출 규모를 공개하진 않았다.

◇농업의 미래 고민하는 어그테크, 국내는 태동기

연도별 어그테크 분야 투자액

스마트팜은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어그테크(agtech)’의 한 갈래다. 농축산물 유통, 친환경 식재료, 대체육 등도 어그테크의 한 분야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어그펀더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어그테크에 투자된 금액은 198억달러(약 22조4235억원)다. 5년 전인 2014년보다 3.5배 증가했다. 이 분야 1위는 미국이다. 스마트팜 스타트업 에어로팜스, 농부와 유통사를 연결해주는 금융 스타트업 프로듀스페이가 대표적이다. 국내 어그테크 시장은 아직 태동기다. 국내 벤처캐피털들은 친환경 혹은 건강식품 업계에 주로 투자하고 있다. ‘스마트 농업과 변화하는 비즈니스 생태계’ 보고서를 펴낸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김수경 책임연구원은 “국내 기업은 재배 농가의 스마트화를 위해 관련 시스템과 시설 보급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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