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한 디자이너들이 자동차의 헤드램프를 디자인하고 있는 모습. /현대차

실제 현실과 가상 현실이 상호작용하는 세계, 즉 ‘메타버스(초현실 사회)’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선 VR(가상 현실)·AR(증강 현실)과 같은 그래픽 기술, 클라우드와 같은 데이터 처리 기술, 5세대 통신(5G)과 같은 초고속 통신망 기술이 전방위로 투입돼야 한다.

결국 메타버스란 최첨단 IT 기술이 집약된 일종의 ‘기술 경연장’이며, 이를 잘 알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아마존·엔비디아 등 글로벌 주요 테크 기업들이 이 무대에 모두 뛰어들어 메타버스 시대의 주인공을 자처하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메타버스는 인터넷 다음 세대의 ‘플랫폼’”이라며 “더 깊은 몰입감, 더 뛰어난 상호작용을 가능케 한 메타버스가 결국 미래 헤게모니를 쥐는 승리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 현실 분야 세계적 석학인 밥 스톤 버밍엄대 교수는 “의료·군사 기술로 시작됐던 가상 현실의 첨단 기술들이 현재 전 산업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우리는 지금 메타버스가 빠르게 확장하는 시대의 입구에 서 있다”고 말했다.

◇가상 세계의 필수품들

지난 4월 게임 '포트나이트' 속에서 열린 미국 팝가수 트래비스 스콧의 콘서트. 1230만명의 유저가 이 콘서트를 가상현실 속에서 함께 즐겼다. 포트나이트는 '메타버스'(초현실 사회)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에픽게임즈

메타버스가 현실 수준의 몰입감을 가지려면 몇 가지 기술적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①일단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하고, ②이를 거의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또 ③가상과 현실의 물리적 이질감이 최소화돼야 한다.

우선 방대한 데이터는 클라우드가 처리한다. 헤드셋 같은 작은 모바일 기기에 매번 수십GB짜리 프로그램을 깔고 지우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클라우드에 구축된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업무를 수행하고, 빠져나오면 간편하다. MS는 최근 출시한 혼합현실(MR) 기기 ‘홀로렌즈’의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쥬어’(Azure)의 활용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R 기기와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 구글, 클라우드 시장 점유율 1등인 아마존(AWS) 등도 메타버스 시대를 기대하고 있다.

AR·VR의 경제 기여도

5세대(5G) 통신 기술은 방대한 데이터의 실시간 전송을 가능케 한다. VR 스트리밍 스타트업인 젠비드 테크놀로지의 제이컵 나보크 CEO는 Mint에 “초현실 사회 속 참가자들이 완전 실시간 의사소통을 하려면 최소 5G, 또는 그보다 더 빠른 6G 초고속 통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최초의 메타버스 게임 ‘세컨드라이프’를 개발한 린든 랩의 필립 로즈데일 창업자 역시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초고속 통신으로) 현실 속 인간의 움직임을 가상 세계로 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0.05초 미만으로 낮출 수 있다면, 가상과 현실 간 이질감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가 개발한 가상세계 툴 '옴니버스'에 구현된 메르세데스 벤츠 자율주행차. 엔비디아 측은 실제 도로 환경과 똑같은 가상 세계를 구현했고, 여기서 자율주행 프로그램을 실험해보면서 기술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

현실에서 공을 던지면 중력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가상 세계에선 끝없이 나아갈 수 있다. 비현실적 사태를 막으려면 중력·관성·반작용 등 물리 법칙이 작용하는 가상 세계(물리 엔진)를 만들어야 하고, 이때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꼭 필요하다. 이 분야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는 지난달 열린 개발자 콘퍼런스인 ‘GTC2020’에서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는 새 플랫폼 ‘옴니버스’를 공개했다. 예컨대 현실과 똑같은 가상 세계를 구현한 뒤, 그 안에 가상의 자율 주행차 수천, 수만대를 집어넣는다. 이들은 각자 목적지를 향해 스스로 달리면서 서로 교신하고, 갑자기 나타나는 보행자나 자전거, 동물 등에 대처하는 훈련도 해볼 수 있다. 초현실 사회 속에서 자율 주행 기술을 개발 중인 영국 스타트업 옥스보티카의 토드 깁스 부사장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현실에선 안전·규제 등의 이유로 불가능한 실험도 초현실 사회 속에선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오늘 가상 세계로 출근한다

페이스북이 만든 VR(가상현실) 헤드셋 '오큘러스'를 착용하면, 몸은 집에 있어도 언제든 가상 세계 속 사무실로 출근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구현한 가상 사무실 '인피니트 오피스'를 활용하고 있는 모습. /페이스북

메타버스의 활용처는 무궁무진하다. 페이스북은 차세대 VR 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를 통해 이미 가상 현실 속 사무실과 피트니스 센터를 구현했다. 몸은 집에 있지만 헤드셋을 쓰는 순간 정신은 사무실로 출근해 가상 세계 속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 동료들도 같은 기기를 끼고 있다면 이젠 재택근무와 출근의 구분도 무의미해진다. 소파에 누워서도 가상 현실 속 아바타에 정장을 입혀놓고 진지한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 똑같은 홈트레이닝이라도 유튜브를 보며 혼자 따라하는 대신 가상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하는 경험이 가능해진다.

메타버스로 영화도 만들 수 있을 전망이다. 가상 현실 전문가이자 책 ‘세컨드라이프 만들기’의 저자인 제임스 와그너 아우는 Mint에 “이미 3D 게임 엔진의 기술 수준은 현실과 매우 흡사하다”며 “SF 영화·드라마 촬영이라면 이제 별도의 세트장을 구현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배우 역할을 할 아바타를 모아놓고 연기를 시키면 된다.

미군이 VR(가상현실) 속에서 가상 전투 훈련을 진행 중인 모습. /미 국방부

이미 미국은 VR 헬맷을 쓰고 메타버스 속에서 훈련받는다. 가상 현실 속에서 실제 전투를 체험하고, 무기 성능을 점검한다. 미군이 VR 훈련에 쓰는 예산은 5년 전 16억달러에서 올해 30억달러로 2배 가까이로 늘었다. 오는 11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에 연사로 참여하는 댄 레저스카 이온리얼리티(미 가상·증강 현실 기업) 대표는 “누구든지 가상 현실 속에서 지식이나 기술을 체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율 주행·로봇 등의 알고리즘도 가상 현실에서 점검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인간과 인공지능(AI)이 함께 훈련하고, 여러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 세상이 열린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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