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노이 인터콘티네털 호텔의 '호텔에서 일하기' 프로모션 /인터콘티넨털 호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일본 최고의 럭셔리 리조트 브랜드 ‘호시노 리조트’는 원래 고객의 절반이 해외 여행객이었다. 코로나 여파로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객까지 발길이 끊기면서 지난 4월 매출은 전년보다 90% 이상 감소했다. 그러자 국내 여행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난 5월 ‘마이크로 투어리즘’이라는 신상품을 내놨다. 감염 위험이 비교적 낮고, 숙박시설에서 30분~1시간 거리에 있는 지역을 엄선해 지역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상품 덕분에 호시노 리조트의 가동률은 최근 80%까지 올라왔다.

호텔·여행·항공 등 관광업계가 생존을 위해 코로나 시대에 알맞은 체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경제활동이 조금씩 살아나고는 있지만 해외여행길은 여전히 막혀 관광업계 상황은 암울하기 때문이다. IAG, 인터콘티넨털, 아코르 등 유럽의 주요 관광 기업을 담고 있는 ‘아이셰어 스톡스 유럽 600 트래블&레저 ETF’의 주가는 21일 기준 16.69유로로, 연초(25.22유로) 대비 수익률이 -34% 수준이다.

여행 여가 ETF 주가 추이

◇호텔·여행업계 ‘구독경제’ 도입

콧대 높은 글로벌 특급 호텔 체인들도 변화에 나섰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호텔 객실을 업무용 공간으로 빌려주는 이른바 ‘재탤(재택+호텔) 근무’ 프로모션을 속속 도입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대실(貸室)’ 서비스인데, 예전엔 호텔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꺼렸다.

세계 최대 호텔 체인 인터콘티넨털 그룹은 미국 마이애미, 싱가포르, 베트남 하노이 등에서 ‘호텔에서 일하기(Work from hotel)’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도 지난 6월부터 ‘하프데이 스페셜’이라는 프로모션을 운영 중이다. 하루 9만9000원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수피리어 룸과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인터컨티넨탈호텔 라현아 매니저는 “코로나 이전엔 1년 평균 투숙률이 80%에 육박하던 호텔이어서 이런 상품을 운영할 필요가 없었다”며 “재택근무가 확산하는 트렌드에 맞춰 객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기획했는데 이용객이 꾸준히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구독경제 모델을 도입한 미국 럭셔리 여행사 인스피라토 홈페이지 /인스피라토 캡처

구독경제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는 호텔 체인도 생겼다. 네덜란드 호텔 시티즌M은 지난 9월 원격 근무자들을 겨냥한 ‘기업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월 550유로(약 74만원)를 내면 전 세계 21개 시티즌M 호텔에서 한 달에 3박씩 묵을 수 있고, 매일 호텔에 설치된 업무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 시티즌M의 레너트 더용 최고마케팅책임자는 “호텔계의 넷플릭스가 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페어몬트·몬드리안·노보텔 등을 보유한 프랑스 호텔 체인 아코르도 구독 모델 도입을 준비 중이다. 아코르의 세바스티앵 바쟁 회장은 지난 20일 프랑스 라디오 엥테르에 나와 “기업을 위해 5000개 호텔의 회의실과 화장실, 와이파이를 구독 형태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럭셔리 여행사 인스피라토는 지난 8월 6개월간 월 2500달러(약 283만원)의 구독료를 내면 전 세계 300개 고급 호텔·리조트에서 무제한 숙박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놨다. 저렴한 여행 구독 모델도 있다. 영국 여행 스타트업 비라이트백은 2년간 매월 49.99유로(약 7만원)를 내면 유럽 내 60개 여행지에서 연간 3회 여행할 수 있는 상품을 판매 중이다. 왕복 항공권이 포함되고, 2박까지 가능하다.

‘멤버십 이코노미’ 저자 로비 켈먼 벡스터는 CNBC에 “지금이 호텔업계가 구독 모델을 시험해 볼 좋은 시기”라면서도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 때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태국 타이항공이 방콕 본사에서 운영 중인 기내 좌석을 본뜬 레스토랑. /연합AP

◇비행기 좌석 뜯고, 식료품 사업 진출

해외여행길이 막힌 항공사들은 국내여행 수요를 잡기 위해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을 내놨다. 호주 콴타스항공은 지난 10일 시드니에서 출발해 8시간 30분간 호주 랜드마크를 돌아본 뒤 시드니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선보였다. 이 항공편의 좌석은 10분 만에 매진됐다.

여객 외 다른 사업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싱가포르항공은 창이공항 활주로에 서있는 대형 여객기 A380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상품을 판매 중이다. 객실 등급에 따라 3만~40만원 정도로 한 끼 식사와 영화, 기념품이 제공된다. 기내식 배달 서비스도 시작했다. 기내식과 함께 와인 한 병, 기내 편의용품 키트까지 배달된다.

핀란드 핀에어가 헬싱키 근교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기내식 /핀에어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태국 타이항공은 방콕 본사에 비행기 객실을 본뜬 식당을 열었다. 비즈니스석과 이코노미석을 분리하고, 기내식을 만들었던 셰프가 요리한다. 핀란드 핀에어는 지난 17일부터 헬싱키 근교의 수퍼마켓에서 비즈니스석 기내식을 시범 판매하기 시작했다.

여객기 좌석을 뜯어 화물 전용기로 개조하는 항공사도 늘고 있다. 화물 운임이 급등한 데다,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면 백신 운송을 위한 화물기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도 작용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지난 6월부터 여객기 10대의 좌석을 뜯어냈고, 한국에서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진에어가 여객기 좌석을 제거해 화물기로 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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