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DB

복고(復古) 느낌을 살린 ‘진로 이즈백’이 인기를 끌자 ‘뉴트로’ 감성으로 병을 디자인한 소주가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소주병 모양은 옛 생각 나게 하지만 그 안에 든 소주 자체는 20세기와 많이 다르다. 소주는 지난 40여 년간 계속 순해져, 도수가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내려가 있다. 1960년대에는 30도를 넘는 소주가 출시되던 것이 2000년대 초중엽에는 20도 이하로 내려갔고, 현재는 16.5도에 이르렀다.

소주의 도수 하락 추세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회사 규정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소주 업계 A팀장의 설명이다. “젊은 소비자들은 독한 술은 싫어해요. 목 넘김이 부드러운 주종을 선호하죠. 술에 처음 맛 들이기 시작하는 미래의 소비자들을 공략하려면 순한 소주가 유리합니다."

그런데 소주에 들어가는 알코올의 양이 줄면(도수가 낮아지면), 사람들이 섭취하는 알코올의 총량도 줄어들까. 만일 도수가 내려감에 따라 소주를 덜 마시게 되거나 비슷한 음주량을 유지한다면 알코올 섭취량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순한 소주가 마시기 수월해서 오히려 음주량이 늘었다면 몸에 들어가는 알코올양은 변하지 않거나 심지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도수가 낮다고 술값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엔 소주 회사 매출이 늘어나게 된다.

음주와 관련한 여러 요인을 모두 통제하고 순수하게 소주 도수의 하락이 알코올 소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난제(難題)에 도전한 학자들이 있다. 변이슬·우석진·전종설이 2017년 논문을 발표했는데, 도수 등이 제각각인 한국 ‘지역 소주’의 특수성을 활용했다. ‘만약 A지역 소주의 도수가 내려갔고 B지역은 그대로였는데 A지역에서 알코올 소비가 늘었다면, 순한 소주가 오히려 음주량을 늘렸다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접근법을 썼다. 알코올 섭취량이 늘었다는 지표로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 수를 활용했다.

연구팀 분석 결과 소주 도수가 1도 내려갈 때 인구 10만명당 알코올 의존증(알코올 사용에 의한 정신 및 행동 장애 처방 건수)은 48건(분기 평균의 약 28%) 늘었다고 나타났다. 소주 도수가 낮은 지역에서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더 많이 증가했단 뜻이다.

소주 도수가 낮아지는 동안 흔히 알코올 중독자라고 불리는 ‘고위험 음주자’ 수 역시 전반적으로 늘어 왔는데, 이 또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고위험 음주자의 90%가 소주를 주로 마시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은 건수는 2003년 6만1464건에서 2015년 14만717건으로 크게 늘었다. 소주 도수 하락이 유일한 이유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소주가 순해졌다고 알코올 의존증이 줄진 않았다는 결론은 내릴 수 있다.

순한 술 자체는 몸에 덜 해롭다. 하지만 그만큼 술을 쉽게 접하고 더 많이 마시게 됨으로써 건강엔 더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술과 함께 ‘중독성 있는 기호품’으로 꼽히는 담배도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미국 국립암센터의 안내문이다. “흡연자들은 순한(‘라이트’) 담배일수록 더 깊이 들이마신다. 더 빨리, 자주, 많이 피우게 된다. 결과적으로 타르·니코틴 등 유해 화학물질을 더 많이 흡수해 건강을 해친다.” 기억하자. 순하다고 다 착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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