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용 핵심 반도체인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12단 제품 양산을 공식 선언했다. 이달 중 고객사에 샘플을 제공하고, 3분기 양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추격자 삼성전자가 지난 2월 HBM3E 12단 제품을 첫 개발하고, 2분기내 양산한다는 계획을 밝히자 시장 선두 SK하이닉스도 맞불을 놓은 것이다. 또한 SK하이닉스는 AI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올해에 이어 내년 HBM 물량까지 ‘완판’됐다고도 밝혔다.

2일 이천 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SK하이닉스 'AI 시대, 비전과 전략'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곽노정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SK하이닉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2일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HBM은 올해도 솔드아웃(완판), 내년도 대부분 솔드아웃”이라며 “HBM3E 12단 제품을 5월 (고객사에) 샘플로 제공하고, 3분기 양산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올해까지 HBM 누적 매출이 백수십억 달러라고도 밝혔다. 이는 경쟁사인 삼성전자가 밝힌 누적 예상 매출액(100억달러)을 넘는 수치다.

이날 ‘AI시대, SK하이닉스 비전과 전략’ 주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는 곽노정 대표를 비롯한 SK하이닉스 주요 경영진이 총출동해 HBM을 비롯한 AI메모리 전략과 추후 한국과 미국 반도체 공장 증설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HBM 단수 경쟁 본격화

현재 HBM은 SK하이닉스의 5세대 8단 제품이 주력으로 꼽힌다. AI 가속기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미국 엔비디아 제품에 SK하이닉스의 HBM3E 8단 제품이 유일하게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달 30일 8단보다 고용량인 12단 제품 양산 시점을 올해 2분기로 앞당겨 HBM 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을 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그러자 시장 선두인 SK하이닉스가 사흘만에 동일 제품 양산계획을 밝히면서 멍군을 놓은 것이다. 곽노정 대표는 이에 대해 “시장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 'HBM3E' /SK하이닉스

또한 SK하이닉스는 ‘높이 쌓는’ 분야에서도 자사 기술력이 더 우수하다고 강조했다. 패키징과 테스트를 총괄하는 최우진 P&T 담당 부사장은 “일각에서는 우리 적층 기술이 높이 쌓을 때 한계를 보일 수 있다고 하지만 이미 우리는 HBM3(4세대) 12단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고 했다. SK하이닉스가 쓰는 ‘MR-MUF’ 기술은 여러 층의 D램을 한 번에 포장하는 기술이다. 오븐에 넣고 한번에 구워내는 방식이라 생각하면 쉽다. 방열 효과가 뛰어난 보호재를 주입해 칩 사이를 채우고, 칩과 그 주변을 감싼 뒤 열과 압력을 가해 굳히는 방식이다.

최 부사장은 “최근 도입한 어드밴스드 MR-MUF 방식은 신규 보호재를 이용해 방열 특성을 10% 개선했다”며 “더 적은 열과 압력을 이용해 굳힐 수 있어 12단, 16단을 쌓더라도 문제없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차세대(6세대) HBM4도 MR-MUF 기술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그래픽=송윤혜

◇ “HBM 과잉공급? 기존 메모리 시장과 달라”

SK하이닉스 뿐 아니라 다른 메모리 반도체 경쟁사들까지 본격 HBM 경쟁에 뛰어들면서 과잉공급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곽노정 대표는 “HBM시장은 고객 수요(주문)에 따라 투자를 집행하고 있어 과잉 수요를 억제하고 있다”며 “기존(메모리)과는 양상이 다른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곽 대표는 “AI 성능이 고도화되고 데이터 모델 사이즈도 커지고 있어 당분간 HBM 시장은 연평균 60% 이상 성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일 이천 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류병훈 부사장(미래전략 담당, 왼쪽부터), 최우진 부사장(P&T 담당), 김영식 부사장(제조기술 담당), 김주선 사장(AI Infra 담당),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 안현 부사장(N-S Committee 담당), 김우현 부사장(CFO), 김종환 부사장(D램개발 담당)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선두 유지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곽 대표는 “HBM 기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SK그룹은 2012년 타사들이 메모리 불황으로 투자를 10% 가량 줄일 때, 오히려 투자를 늘려왔다”고 했다.

◇청주·용인·인디애나 신규 팹 전략

SK하이닉스 경영진은 앞으로 차세대 반도체 생산기지가 될 청주 M15X 공장, 용인 클러스터, 인디애나 패키징 시설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최근 SK하이닉스가 20조원을 투자해 청주에 짓기로 한 M15X 공장은 D램용으로 지어진다. 제조기술 담당인 김영식 부사장은 “지난달 건설 공사에 착수했으며, 내년 11월 준공 후 2026년 3분기부터 본격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M15X는 연면적 6만3000평 규모의 복층 팹(반도체 생산시설)로, 현재 HBM을 생산하는 M15팹과 붙어있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게 SK하이닉스 설명이다.

SK하이닉스 충북 청주 M15X 조감도 /SK하이닉스

용인 클러스터는 차세대 메모리 개발 및 생산기지로 활용된다. 415만㎡(약 126만평) 부지에 총 4기 팹을 지을 예정인데, 먼저 첫 팹은 내년 3월에 공사 착수해 2027년 5월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김영식 부사장은 “일단 1기 팹에서는 D램을 생산할 계획이며, 그 뒤에 지어질 팹은 그때 기술 상황에 맞춰 용도를 정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한 1기 팹이 들어설 1단계 부지 조성 공사 진척률은 현재 42%라고도 밝혔다.

미국 인디애나에 5조2000억원을 들여 짓기로 한 패키징 및 연구개발 시설은 미국 빅테크 등 현지 고객들에 공급될 HBM을 패키징할 예정이다. 김영식 부사장은 “현재 패키징 작업은 용인에서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