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7년 동안 이어진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인 동안, 글로벌 주요 반도체 경쟁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며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대만 TSMC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분야 선두를 확고히 다졌고, 미국 인텔과 일본 라피더스 등 후발 주자는 국가적 지원을 받아 삼성전자를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2030년까지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모두에서 글로벌 1위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직면한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김현국

◇반도체 매출 삼성 제친 TSMC

지난 5일(현지 시각) 대만 중앙통신사(CNA)는 투자 기업 트라이오리엔트 자료를 인용해 “TSMC가 창업 36년 만에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이 됐다”고 보도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TSMC는 지난해 반도체 매출 693억달러를 기록해 미국 인텔(542억3000만달러)과 삼성전자(509억9000만달러)를 넘어섰다. 2017년 중앙처리장치(CPU) 왕국 인텔을 제치고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기업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삼성전자가 3위가 된 것이다.

TSMC가 삼성전자를 앞선 배경에는 5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파운드리 공정에서의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이 있다. 스마트폰,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최근 수년간 수요가 급증한 최첨단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되는 고부가가치 반도체는 대부분 5나노 이하 공정으로 만들어지는데, TSMC가 이 시장에서 90% 이상을 차지한다. 파운드리 고객사들이 쉽게 제조사를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점유율은 향후 3나노, 2나노대 경쟁에서도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 57.9%, 삼성전자 12.4%로 45%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시장 점유율을 좁히기 위해서는 엔비디아와 AMD, 퀄컴 같은 대형 고객사를 유치해야 하는데 이들 기업과 TSMC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기술력과 비용 모두에서 삼성전자가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2021년 파운드리 시장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도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등에 업고 미국 애리조나, 오하이오, 뉴멕시코, 오리건에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인텔은 독일에 공장을 짓기로 했고, 일본에도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도체 노하우를 갖고 있는 기업”이라며 “2025년에 삼성전자와 TSMC를 앞서겠다는 인텔의 계획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일본·중국도 추격 나서

과거 삼성전자에 밀려 반도체 시장에서 존재감이 사라졌던 일본도 대대적인 반도체 부흥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6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낸드플래시 제조 업체 키옥시아의 첨단 공장 건설에 2400억엔(약 2조1507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삼성전자와 기술력 격차가 크지 않은 낸드플래시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주요 기업과 정부가 함께 만든 파운드리 업체 라피더스는 최근 네덜란드 ASML과 동맹을 맺고, 2025년까지 2나노 공정 시험 생산을 실현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의 제재에도 반도체 굴기를 포기하지 않는 중국도 호시탐탐 파운드리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중국 1위 파운드리 업체 SMIC는 미국 제재에 막히지 않은 구형 반도체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동시에 올해 설비 투자액을 기존보다 20% 많은 75억 규모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막대한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반도체 기술력을 끌어올려 삼성전자, TSMC 등과 경쟁할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후발 주자들은 막대한 자금력과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우수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면서 “사법 리스크가 사라진 지금이 삼성의 반도체 전략을 재검토하고 수정할 적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