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북촌로의 한 유명 수제버거 체인점 앞에서 만난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가 부동산 조각 투자를 뜻하는 퍼즐 모양을 들고 있다. 뒤편에 자리한 한옥 형태의 상업용 건물은 루센트블록이 처음 53억원을 공모해 투자한 1호 투자처이다. /박상훈 기자

올해는 부동산이나 미술품, 음악 저작권 같은 고가 실물 자산을 주식처럼 지분을 쪼개 거래하는 조각 투자 활성화의 원년으로 여겨진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2월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이후 시장이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탔기 때문이다. 증권형 토큰은 주로 조각 투자에 활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이 있다. 2018년 설립된 부동산 조각 투자 스타트업 루센트블록이다. 최근 서울 재동의 유명 수제 햄버거 가게 앞에서 만난 허세영(34) 루센트블록 대표는 “이 가게 앞에서 ‘햄버거 사먹을 돈 아껴서 가게 건물 10만원어치 사세요’라고 홍보하며 사람을 모았다”고 했다. 그렇게 4715명에게서 십시일반 모은 53억원으로 재작년 루센트블록의 1호 공모 투자 건물 ‘안국 다운타우너’를 매입했다.

미국 카네기멜런 대학에서 컴퓨터공학 학·석사 학위를 따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으로 일하던 허 대표는 건강이 악화하면서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사람이 죽는 건 한순간인데, 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사회적 논란이 된 젠트리피케이션(지역 개발로 저소득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에 관심을 가졌다. “그전까지만 해도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상업용 부동산에 소액 투자자가 투자할 방법은 없었어요. 누구나 상업용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다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죠.”

루센트블록의 사업은 금융위원회가 규제 샌드박스(규제 예외 제도)와 혁신 금융 서비스로 선정하며 꾸준히 성장했다. 이태원 새비지가든, 대전 창업스페이스, 문래 공차 같은 공모 투자를 거듭 성공시켰고, 부동산 침체기였던 작년엔 수원행궁 뉴스뮤지엄 건물 등 4건의 공모 투자에 성공했다. 작년 11월엔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허 대표는 “부동산 소유권은 신탁사가 갖고, 투자한 돈과 거래 데이터는 증권사와 예탁결제원에서 관리한다”며 “루센트블록이 망하더라도 투자자들은 손해를 보지 않도록 사업을 설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