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 시각) 막을 내린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를 관통한 키워드는 ‘모든 기기와 인공지능(AI)의 연결’이었다. AI를 탑재해 성능·서비스를 혁신적으로 개선하거나, 미디어·유통·화장품·자동차 등 전혀 다른 산업에서 AI를 적용한 제품과 서비스들이 가장 큰 관심을 모았다. AI는 인류의 삶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바꾸고 있으며, 어떻게 달라지게 할 것인가. 국내 대표 AI 전문가이자 각 기업 AI 사업·개발을 이끄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 배순민 KT 기술혁신부문 AI2X 랩장(상무), 양승현 SK텔레콤 글로벌설루션테크 담당(CTO)을 현지에서 만나 CES 2024 관람 후기를 들었다.

배경훈 LG AI 연구원장(왼쪽부터), 배순민 KT 기술혁신부문 AI2X 랩장(상무), 양승현 SK텔레콤 글로벌설루션테크 담당(CTO).

- 실제로 AI가 현실이 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나.

배경훈 “AI가 단순히 기술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실생활이나 산업 현장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전시장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로레알이 적용한 생성형 AI를 예로 들면 현장에서 자신의 얼굴 사진을 찍어서 AI가 피부톤을 분석하고, 화장품이나 피부 관리 방법을 추천해 준다. 월마트의 AI 챗봇도 리뷰 요약부터 제품 추천까지 재빠르게 답했다. 화장품과 유통이 AI를 통해 진화한 것을 보여준다.”

배순민 “지난 5년간 CES에서 하드웨어 기업들이 AI를 도입하고 다른 분야와 협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정말 일부만 지켜졌다. AI의 성능이 기대 이하였고, 기기를 만드는 기업들이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테슬라의 AI 기반 사물인터넷(IoT) 협업, 월마트와 마이크로소프트(MS) 협업 등은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나왔다. 마치 스마트폰 신제품을 발표하는 것처럼 사양이나 추구하는 철학이 명확했다.”

양승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다 보니 세계 테크의 흐름이 실용성을 중시하고 있다. 이번 CES에 등장한 AI도 모두 실용성을 갖춘 것들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로켓이나 인공위성, 우주 같은 프로젝트가 중심일 때가 있었다. 이제는 진실의 순간이 왔다. 자동차 업체들도 완전 자율주행 같은 이상을 버리고,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를 들고 나왔다.”

-AI 도입 방식이 혁신적인 분야나 기업을 꼽는다면

배경훈 “농기계의 테슬라라 불리는 존디어다. 몇 년 전부터 농기계에 AI 적용을 시도했는데, 이젠 정말 무르익었다. 이번에 나온 제품은 로봇이 카메라로 농경지를 촬영하고, 부족한 데이터는 드론으로 정밀하게 보충했다. 농경지 상태 정보가 데이터화됐고, 트랙터가 작물을 적정한 깊이와 높이로 알아서 심는다. 농업 수천년의 역사가 AI로 혁명기를 맞게 됐다.”

양승현 “퀄컴 부스에서 AI반도체(스냅드래곤8 젠3)를 탑재한 스마트폰 시연을 봤다. 이미지 생성 AI로 그림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0.5초 안팎이 걸렸다. AI 챗봇의 경우에는 답변이 나오는 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챗GPT처럼 통신을 이용해야 하는 AI는 답변을 받기까지 수초의 시간이 걸리는데, 기기에 탑재된 AI는 그만큼 신속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배순민 “과거 모빌리티가 모여 있는 LVCC 웨스트관이 이 정도로 콘텐츠가 꽉 채워져 있진 않았다. 지금은 삼성전자·소니가 터줏대감인 센트럴관보다 더 세련된 느낌이다. 모빌리티가 AI와 하드웨어 결합의 핵심 전장(戰場)이 됐다.”

-AI가 가까운 시일 내에 적용되기 어려운 분야도 있나

양승현 “AI의 정답률 100%를 요구하는 분야가 그렇다. AI가 그럴싸한 거짓말을 지어내는 환각 현상(할루시네이션)과 같은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금융업 같은 경우, 한번에 수백억~수천억원이 오가는 거래에서 AI가 오답을 내면 치명적이다. AI가 나오면 인터넷 검색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검색을 해야 정보 정확도가 높다. CES에서도 산업마다 AI 도입 온도 차가 분명히 보였다.”

- 한국의 AI 기술과 산업은 세계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인가

배순민 “올해 혁신상 수상 기업 중 46%가 한국 기업이었다. 스타트업 전용 전시관인 유레카파크의 중심이 한국 스타트업들이었다. 문제는 언어다. 한국 스타트업의 제품, 서비스에 탑재된 AI가 영어도 잘 구사해 글로벌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한국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해외 기업과 AI 동맹(얼라이언스)를 맺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아마존 부스에 가보니 글로벌 모빌리티 대기업·스타트업 로고 150개가 붙어 있더라. 모두 아마존 파트너들이다.”

배경훈 “누구나 맞춤형 AI를 만들어 사고팔 수 있는 GPT 스토어가 등장했는데, 한국은 아직 AI로 수익을 창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대기업은 AI 인프라 구축에만 열을 올리고, 스타트업은 틈새시장 발굴에만 치중하고 있다. 한국이 탄탄한 AI 생태계를 갖추려면 결국 대기업이 스타트업에 손을 내밀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


조선미디어그룹 CES 특별취재팀

▲조선일보 ▷팀장=정철환 파리 특파원, 조재희·정한국·김성민·임경업·오로라·유지한·이해인 기자

▲TV조선 ▷김지아 기자

▲조선비즈 ▷팀장=설성인 IT부장, 최지희·고성민·권유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