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TSMC발(發) 충격으로 각국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TSMC가 최근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에 제품 납품을 늦춰 달라고 통보한 사실이 알려지자 반도체 경기 전망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18일 대만 증시에서 TSMC 주가는 3% 넘게 하락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도 2.5%, SK하이닉스는 2.78% 하락했다. 엔비디아(3.7%)를 비롯해 마이크론·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 주가 대부분이 2~3%(15일 종가 기준)가량 떨어졌다. 반도체주의 동반 하락은 각국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 코스피는 1.02%, 호주의 ASX지수는 0.67%, 대만의 가권지수는 1.32% 하락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TSMC는 회사 내부적으로 반도체 수요 회복이 예상보다 훨씬 더딘 것으로 판단하고, 주요 장비 공급사에 제조 장비 납품을 미뤄 달라고 일제히 통보했다. 통보를 받은 기업 중에는 TSMC의 최첨단 공정 장비를 독점 공급하는 네덜란드 ASML도 포함됐다. 그동안 미국·일본에 신규 공장 설립을 연이어 발표하며 투자의 고삐를 조이던 TSMC가 수비적인 태세로 전환한 것이다. 18일 대만 공상시보는 “골드만삭스가 TSMC의 최신 공정인 3나노 공정 예상 가동률을 4~6%포인트 가량 낮추고 예상 주가도 하향 조정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시장조사업체들은 2년 가까이 하락세가 이어지던 메모리 반도체는 올해 4분기부터 가격이 상승 추세로 전환한다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상대적으로 선방하던 시스템반도체·파운드리와 어려움을 겪던 메모리 반도체의 운명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50조원 투자한 공장 가동 연기한 TSMC
TSMC는 약 50조원을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미국 공장 가동 시작 시점을 2025년으로 1년 늦췄다. 이 공장의 최대 고객사는 애플로, 차기 아이폰에 탑재될 첨단 스마트폰 두뇌 반도체(AP)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TSMC는 AP를 비롯해 PC반도체·자동차 전장 등 시스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데, 글로벌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주문 물량이 좀처럼 늘어나지 않자 가동 시점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미국·일본 등에 추가 공장을 건설하면서 늘린 투자가 과잉 투자로 이어질 수 있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공무원들의 아이폰 사용 금지를 명령했고, 중국 경쟁사 화웨이가 자국기업 SMIC와 협업을 통해 AP를 제조하면서 TSMC의 잠재적 라이벌까지 등장했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핵심 반도체인 GPU(그래픽처리장치) 제조를 TSMC에 맡기지만, AI반도체 수요로는 반도체 수요 감소를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AI반도체는 10나노 이하의 첨단 공정으로 제조되기 때문에 당장 생산 수량에 한계가 있다”며 “전체적인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TSMC에 들어오는 스마트폰·자동차용 반도체 주문 물량 감소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고난 끝나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업체들의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는 상황이 다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최근 글로벌 D램 시장이 4분기 공급 과잉에서 부족 상황으로 전환되면서 올해 4분기를 시작으로 호황 사이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가트너는 올 4분기 D램 가격이 3분기 대비 17.8% 오르고, 낸드 플래시도 가격 상승세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D램 가격 상승세에 따라 내년 글로벌 D램 시장 매출은 올해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회사들이 최근 해외 스마트폰 업체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을 5~10%가량 인상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내년부터 가격 회복과 동시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도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