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국 패스트패션 앱 ‘쉬인’은 최근 중국 난징 본사를 싱가포르로 옮겼다. 자사 홈페이지에서 ‘중국’이라는 문구도 없애고 글로벌 기업임을 강조하고 있다. 쉬인은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150곳 시장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이라며 “모든 사람이 패션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글로벌 패션 및 라이프 스타일 이커머스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쉬인과 미국 앱 장터에서 1·2위를 다투는 앱 티무는 아예 본사를 미국 보스턴에 설립했다. 티무의 모기업인 중국 대형 전자상거래 기업 핀둬둬도 지난 3월 본사를 중국 상하이에서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옮기면서 중국 색채를 지우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탈(脫)중국’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본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끊고 본사와 공장을 중국 밖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특히 2019년 미국 트럼프 정부의 화웨이 퇴출과 최근 이용자 데이터를 불법으로 수집해 중국 당국에 제공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틱톡 문제 이후 이런 흐름은 거세지고 있다.

◇잇따른 국적 세탁, 왜?

중국인이 아닌 최고경영자(CEO)를 내세우는 것도 특징이다. 2021년부터 틱톡 CEO를 맡고 있는 저우서우쯔는 싱가포르 태생이다. 쉬인 창업자이자 CEO인 크리스 슈도 지난해 싱가포르 영주권을 얻고 시민권 취득 절차를 밟고 있다. 로이터는 “중국 본토 소재 테크 기업 경영자들이 미국 진출을 위해 중국 국적이 아닌 홍콩이나 캐나다, 일본 등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시민권 취득을 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기업이 잇따라 중국 색채를 빼는 건 미국 정치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다. 미국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장벽, 신장·위구르 지역의 생산품 수입 금지, 데이터 유출을 우려한 보안 심사 강화 같은 규제를 사전에 피해가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 태양광 패널의 10%를 생산하는 중국 징코솔라는 최근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공급망을 중국 밖으로 완전히 이전했는데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중국 태양광 패널에 대한 미국 수출 규제를 우회하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공급망을 해외에 구축하는 것은 미·중 갈등 심화로 중국 공급망이 막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쉬인은 대부분 제품을 중국에서 만들어 왔지만 최근 멕시코, 브라질 등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중국 본토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중국 본토 제품은 감소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 4월까지 1년간 미국이 수입한 해외 상품 가운데 중국산 비율이 15.4%로 2006년 이후 17년 만에 최저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탈중국 러시가 중국 정부의 ‘빅테크 때리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NYT는 “중국 당국은 중국 톱 테크 임원들과 외국 컨설팅 회사를 억류하고 괴롭혀 왔다”며 “특히 팬데믹 기간 중국 내 사업이 정부의 자비에 따라 운영된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했다. 컨설턴트 아이작 스톤 피시는 NYT에 “창업자와 직원이 중국 관리에게 협박을 받거나 체포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의균

◇이미 중국 기업 낙인

다만 중국 테크 기업들의 이런 시도가 의도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 기업들이 이미 중국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지난 8일 동료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쉬인은 중국 기업으로서 감시를 피하기 위해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했지만 아무도 이 같은 쉬인의 노력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썼다.

티무의 모기업 핀둬둬 앱은 동의 없이 사용자 위치와 연락처, 캘린더, 사진 앨범 등에 접근할 수 있어 개인 정보에 불법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또 쉬인과 티무 모두 판매하는 상품 중 일부가 지역 주민들의 노동 착취와 인권 침해 논란이 있는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 자란 목화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은 지난달 “중국 회사들은 강제 노동으로 싼값의 상품을 미국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미국 무역법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