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의 미래 먹거리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글로벌 1위 업체인 대만 TSMC 간 점유율 격차가 더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은 올 상반기 세계 최초로 머리카락 굵기 3만분의 1에 해당하는 3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초미세 공정의 반도체 양산(量産)에 성공하며 시장 점유율 격차를 줄이는 데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여파로 IT 수요 위축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점유율 격차가 더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9일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7~9월)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56.1%, 삼성전자 15.5%로 양사 간 격차는 40.6%포인트로 나타났다. 압도적 1위인 대만 TSMC와 추격하는 삼성전자의 ‘1강 1중’ 체제인 파운드리 시장에서 두 업체의 격차는 작년 4분기 33.8%포인트에서 37.3(1분기)→37.0(2분기)→40.6%포인트(3분기)로 점차 커지고 있다.

TSMC는 세계 5대 파운드리 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3분기 매출이 전 분기보다 두 자릿수(11.1%) 성장률을 기록했다. 나머지 기업들은 0~4%대 성장에 그쳤고, 삼성전자는 유일하게 파운드리 부문 매출이 마이너스(-0.1%) 성장했다.

TSMC는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도 한발 앞서고 있다. TSMC는 미국에 총 400억달러(52조9000억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 건립에 나서고 있으며, ‘Made in USA(미국산)’ 반도체를 생산한다는 점을 앞세워 애플·엔비디아·AMD 같은 큰손 고객을 붙잡아 두고 있다.

트렌드포스는 “하반기 수요가 부진한 가운데 반도체 재고 소진이 더뎌 파운드리 주문도 줄고 있다”며 “오직 TSMC만 고객사인 애플이 아이폰 신제품용 반도체를 대거 주문하면서 상당한 매출 성장과 이익을 거뒀다”고 분석했다. 애플은 지난 6일(현지 시각) 열린 TSMC의 미국 애리조나주 반도체 신공장 장비 반입식에 팀 쿡 CEO(최고경영자)가 직접 참석할 만큼, TSMC에만 반도체 제품을 주문하는 ‘열성 고객’이다. 이 자리에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을 비롯해 AMD, 엔비디아 CEO 등 정치권·빅테크 업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 기업을 고객사로 유치해야 하는 삼성 입장에선 한발 밀린 셈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불황이 오면 업계 1위 업체에 주문이 몰리는 현상이 심화한다’면서 “삼성이 불황의 고비를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시장 후발 주자인 삼성전자는 35년째 파운드리 사업에 주력해온 TSMC와 비교해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과 고객 신뢰도 등의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출 성장의 핵심인 생산 능력도 TSMC의 3분의 1 수준이다. ‘2030년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1위’ 목표를 내건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추가 투자하며 TSMC 추격에 나서고 있다. 세계 최초로 3나노 양산에 나서면서 기술 격차를 좁히는 동시에 “주문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생산 라인을 지어 놓는다”는 이른바 ‘셸 퍼스트(Shell first)’ 전략도 밝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반도체 업계는 지금 한마디로 전쟁 중”이라며 “반도체의 미래인 파운드리 시장을 잡기 위해서는 반도체 특별법 등 국가적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