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 시각) 미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에서 열린 테크크런치 디스럽트에서 한 심사위원이 자사 서비스 발표를 마친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김성민 특파원

“타깃 시장은 어디인가?” “기기 작동 중 온라인 접속이 끊기면 어떻게 하나?”

18일(현지 시각) 미 샌프란시스코 모스콘센터. 미국의 헬스케어 스타트업 ‘넥스젠 포트’의 캐시 스키너 CEO(최고경영자)가 무대 위에서 6분간의 발표를 마치자, 세콰이어·인덱스벤처스 등 실리콘밸리 유명 VC(벤처캐피털)에서 나온 심사위원 5명이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이 업체는 암 환자 몸에 부착해 혈액 상태를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심사위원들은 답변을 듣고 종이 위에 점수를 매겼다.

이는 ‘테크크런치 디스럽트’의 메인 행사인 ‘배틀필드’다. 전 세계 스타트업 중 고르고 고른 20개 업체가 무대에 올라 6분간 발표하고, 6분간 심사위원의 질문을 받는다. 1등을 하면 10만달러(약 1억4000만원)의 상금을 준다. 행사를 지켜보던 한 관람객은 “3년 만에 진짜가 돌아왔다”고 했다.

이날 모스콘센터에서는 북미 최대 스타트업 전시회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Disrupt)가 열렸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3년 만의 오프라인 개최다. 2011년 시작된 테크크런치 디스럽트는 스타트업들이 자신의 서비스를 소개하고 투자자를 유치하는 자리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 등도 사업 초창기 이 무대에 올랐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곳에 온 모두가 제2의 저커버그, 머스크를 꿈꾼다”고 했다.

◇스타트업의 각양각색 서비스

최근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로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찬바람이 불지만, 이날 행사장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스타트업 관계자와 투자자, 미디어들로 북적였다. 전 세계에서 온 250여 개 스타트업들은 전시 부스를 차리고 자율주행 배달로봇부터 업무협업툴까지 각양각색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였다.

미국의 스타트업 팬서텍은 팔목이나 다리에 차면 사용자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사용자가 운동 시 올바른 자세를 하면 진동을 울리는 기기를 선보였다. 골프 스윙을 할 때 자세가 올바르면 진동을 울려 운동 학습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부스에 있던 팬서텍 관계자는 “이는 재활 훈련 등에 활용돼 환자의 치료와 회복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앨리로보틱스는 사람의 팔 움직임을 따라하며 학습하는 로봇팔을 들고 나왔다. 로봇 앞에 서서 오른팔을 들고 좌우로 흔드니, 로봇이 팔 움직임을 감지하고 좌우로 따라 움직였다. 부스 전시자는 “사람의 움직임을 학습해 공장에서 물건을 들거나, 벽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 기반 스타트업 옴네키는 AI(인공지능)를 활용한 문자-이미지 변환 모델로 광고용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소개했고, 캐나다 스타트업 스왑로보틱스는 잔디를 깎고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는 자율주행 전기 트랙터를 선보였다.

상용화는 멀어 보였지만 혁신적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도 많았다. 스코틀랜드의 터치랩 로보틱스는 로봇에 촉각을 부여하는 전자 피부 기술을 선보였고, 뉴욕의 리얼리티 디펜더는 가짜 영상인 딥페이크를 탐지하는 서비스를 소개했다.

◇국가별 스타트업 전시도 치열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전시장엔 국가별 경쟁도 치열했다. 한국은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한국정보기술연구원, AI양재허브 지원으로 20개 스타트업이 부스를 꾸렸다. 일본은 14개, 우크라이나는 11개의 스타트업이 참여했다.

일본 스타트업 스노X는 가상공간에서 NFT(대체 불가능 토큰)를 거래하는 마켓을 소개했다. 미치토모 나카하라 CTO(최고기술책임자)는 직접 VR 기기를 쓰고 가상현실에서 NFT를 샅샅이 훑어 보는 상황을 시연했다. 한국 스타트업들은 전시 부스가 모인 행사장 한쪽 무대에서 3분씩 자사 서비스를 소개했다. 문서기반 협업툴 스타트업 타입드(Typed)는 구글 독스 등에서 문서를 작업하면 AI가 자동으로 관련 문서를 추천하는 기능을 선보였다. 뉴빌리티는 레이더·라이다 없이 10개의 카메라 렌즈로 자율주행하는 배달로봇을 선보였다.

행사장에서 만난 윤종영 AI양재허브 센터장은 “올해 디스럽트는 스타트업들이 시장에 어떻게 파고들지, Z세대를 어떻게 공략할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많았다”며 “한국 스타트업들도 글로벌 눈높이만큼 성장한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