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이 최근 공개한 가상인간 애나의 티저 이미지. 동공과 안면근육이 진짜 사람처럼 미세하게 움직여 ‘클로즈업’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크래프톤

넷마블의 자회사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는 올 초 ‘리나’라는 가상 인간을 공개했다. 리나는 800여 가지에 이르는 다채로운 표정 데이터를 담은 것이 특징이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때도 실제 인간처럼 표정이 수시로 변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표정 연기를 인정받아 지난 3월 배우 송강호 등이 소속된 기획사 써브라임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넷마블은 연내 가상 인간 4인조 걸그룹인 ‘K팝 버추얼(virtual) 아이돌’도 데뷔시킬 예정이다.

지난 2월 가상 인간 사업 진출을 선언한 크래프톤도 지난달 ‘애나’의 티저 이미지를 공개했다. 애나는 가상의 뼈와 관절을 만들어 움직임을 제어하는 리깅(rigging) 기술과 사람의 실제 움직임을 그대로 베끼는 ‘모션 캡처(동작 인식)’ 기술로 탄생했다. 동공과 안면 근육이 실제 인간처럼 미세하게 움직여 ‘클로즈업’에 강하다는 평가다. 크래프톤이 보유한 또다른 가상인간은 지난달 데뷔한 ‘위니’다. 걸그룹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화려한 춤 솜씨로 주목받고 있다.

게임 회사들이 선보인 가상인간

지난해 8월부터 활동 중인 스마일게이트의 가상 인간 ‘한유아’는 태생이 ‘VR(가상 현실) 게임’ 캐릭터다. 최근엔 게임을 넘어 광고 모델과 가수로 활동 중이다. 카카오게임즈의 자회사인 넵튠은 지난 2019년 데뷔시킨 ‘수아’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지난 3월까지 가상 인간 제작사인 딥스튜디오에 81억원을 투자했다.

◇ 게임업계 새 먹거리 된 ‘가상인간’… “가상 인간, 게임 CG·AI 기술이 핵심”

게임사들이 가상 인간을 미래 먹거리로 삼고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제조업에서 로봇이 자동화를 이끌며 혁신을 가져왔듯, 콘텐츠 산업에서는 가상 인간이 판도를 바꿀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글로벌 마케팅 분석 업체 하이프오디터는 가상 인간을 활용한 마케팅 시장이 올해 150억달러(약 19조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임 업계의 가상 인간 시장 진출이 새롭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게임사들은 가상 인간 개발에 특화된 기술과 노하우를 오랜 기간 쌓아왔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가상 인간은 컴퓨터 그래픽(CG)과 인공지능(AI) 기술의 결합”이라며 “주로 사용되는 모션 캡처, 음성 인식, 챗봇, 컴퓨터 비전 등의 기술을 비롯해 대중의 취향에 맞춰 가상의 인격(페르소나)과 세계관을 설정하는 것 역시 게임사들의 장기”라고 했다.


게임사들은 가상 인간을 통해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가상 인간을 게임에 등장시키는 것은 물론 이들이 주인공인 영화·CF·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 제작에도 나서고 있다. 하이브·JYP·SM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들과 협업할 수 있는 것도 가상 인간 제작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가상 인간은 스케줄에 신경 쓸 필요가 없이, 무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며 “가상 인간 개발과 활용은 게임 개발사로서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을 평가할 기회도 된다”고 했다.

게임사들은 최근 가상 인간 전문가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4월 이제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를 최고연구책임자(CRO)로 영입했다. 이 교수는 인간의 전신 근육 움직임을 AI 딥러닝(심화 학습) 기술을 이용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한 연구로 유명하다. 200여 명이 속한 엔씨소프트의 AI연구·개발(R&D) 조직 수장 자리에 가상 인간 전문가를 앉힌 것이다. 이달에는 디즈니·애플 등에서 3D캐릭터 기술 감독을 맡았던 정변건씨도 임원으로 합류했다. 이제희 CRO는 “가상 인간의 종착점은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라며 “실시간 상호 작용 기능의 고도화가 승부수”라고 했다.

◇AI 목소리 더해지며 시장 확대

가상 인간은 최근 다양한 ‘AI(인공지능) 목소리’와 결합하며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다. AI 목소리 시장엔 네이버(클로바 더빙)를 비롯해 KT(AI 보이스 스튜디오), CJ올리브네트웍스(AI 보이스 클로닝) 등 IT 기업들이 잇따라 뛰어든 상태다. 네이버는 내레이션·리포터·DJ 등 특정 분야에 적합한 목소리의 특성을 살려 합성 음성을 만든다. 지난달 30일엔 쇼 호스트의 AI 목소리를 입힌 아바타를 라이브 쇼핑 방송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KT는 ‘우아한’ ‘단호한’ 등 감정 표현에 특화된 100여 가지 다양한 목소리를 제공한다. 사내에 ‘버추얼 휴먼 랩’이란 연구 조직을 둔 CJ올리브네트웍스는 텍스트를 실시간 음성으로 전환하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