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 반도체 기업 SK하이닉스가 지난해 계약을 체결한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 ‘키파운드리’의 인수가 최근 주요국의 반독점 심사 승인을 거쳐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충북 청주에 본사를 둔 키파운드리는 지름 200㎜짜리 8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기반으로 한 반도체를 위탁 생산하는 회사다.

8인치 웨이퍼는 최근 품귀 현상을 빚는 차량용 반도체 등 중저가 반도체의 핵심 재료로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하다. 첨단 공정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12인치(지름 300㎜) 웨이퍼 대비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며, 반도체 산업의 주력에서 밀려났지만 최근 공급난 속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기존 8인치 파운드리 자회사(SK하이닉스시스템IC)에 키파운드리까지 인수해, 차량용 반도체 등 8인치 시장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자율차 시대 수혜 산업”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줄줄이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다품종 소량생산인 데다, 단가 역시 모바일용 반도체의 10분의 1 수준이라 반도체 업계의 외면을 받아왔다. 하지만 전기자동차·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본격화하면서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 확보 차원에서 다시 이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는 작년 450억달러(약 54조원)에서 2026년 676억달러(약 81조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는 작년 11월 ‘엑시노스 오토’ 등 차량용 반도체 3종을 공개했다. 각각 차량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연산, 차량 내 전력 조절 등에 쓰이는 반도체다. 삼성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 후발 주자지만 10나노대 미세 공정 파운드리의 경쟁력을 내세워 고객사를 유치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LG반도체를 보유했던 LG전자도 작년부터 CTO(최고기술책임자) 부문 산하 시스템통합반도체센터에서 차량용 반도체 설계 연구에 돌입했다. 자사 전장(電裝·자동차 전기장치 부품) 사업에 필요한 주요 반도체를 자체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세계 2위 반도체 기업인 인텔도 지난 2월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같은 달 미국 엔비디아 역시 영국의 자동차 기업 재규어랜드로버와 자율주행 전용 반도체 개발을 위해 손잡았다. 세계 5위 파운드리 회사인 중국 SMIC는 지난해 8억7000만달러(약 1조1200억원)를 들여 상하이에 차량용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고 밝혔다.

◇유럽, 일본 기업들이 시장 주도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레벨 3(조건부 자율주행) 자율주행차가 본격 상용화되는 올해부터 급속 성장할 전망이다. 내연기관 자동차에는 보통 200~300개의 반도체가 탑재되지만, 전기차에는 1000개, 자율주행차에는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탑재된다. 차량 범퍼에서부터 계기판, 바퀴, 실내 좌석에 이르기까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내연기관 차량에 들어가는 반도체 비용은 평균 470달러지만,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된 테슬라 모델3엔 그 세 배가 넘는 1697달러어치 반도체가 들어간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들은 유럽, 일본에 주로 포진해 있다.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온, 일본 르네사스,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4곳의 시장점유율만 해도 50%가 넘는다. 자국의 발달한 자동차 산업을 바탕으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선점해 수많은 충성 고객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는 사람 생명을 좌우하는 만큼 높은 신뢰성과 내구성을 요구한다. 차량 제조사도 부품사와 오랜 거래를 바탕으로 쌓은 협력 관계를 중시해 진입 장벽이 높은 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술력, 자본력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다수 참전한 만큼 차량용 반도체 업계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