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의 안방인 국내 가전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중 격전지로 변한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 얘기다. 로봇청소기는 집 안의 각종 장애물을 피해 다니며 구석구석 청소하는 일종의 ‘자율주행 기기’다. AI(인공지능), 3D(3차원) 센서, 라이다 등 자율차 관련 기술이 축약돼 있다.

중국 로보락의 프리미엄 로봇청소기 ‘S7 맥스V 울트라’. /로보락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2000억원 수준으로, 연평균 30% 이상 고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시장에 중국 ‘3대 업체’ 로보락과 샤오미, 에코백스가 뛰어들어 국내 업체의 점유율을 잠식하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29일 가전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1~5월 누적)에서 중국 로보락은 점유율 22%로 삼성전자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국내 업체인 에브리봇, LG전자를 모두 제친 것이다. 로보락을 비롯해 중국 샤오미, 에코백스 등 중국 업체는 국내 시장 3분의 1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로보락, LG 제치고 매장 39개로 오프라인도 총공세, 중국 로봇 청소기 국내 시장 3분의 1 장악

중국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한국 시장 1위를 넘보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로보락은 지난해 1위와 불과 1%포인트 차이가 나는 2위에 올랐다. 2020년 한국에 법인을 세운 지 불과 1년 만이다. 한국 진출 후 온라인 판매에 주력해왔던 로보락은 지난 20일 전국에 39곳의 매장을 내고 오프라인 시장에도 정식 진출한다고 밝혔다. 로보락 측은 “국내 로봇청소기 물량의 70% 이상이 온라인에서 판매돼 그간 온라인 유통에 주력했지만 코로나 엔데믹을 맞아 매장에서 직접 체험을 원하는 한국 소비자를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매장 수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28일엔 중국 에코백스가 “타사 로봇청소기 무상 보증은 1년이지만, 우린 2년을 보증하겠다”고 발표했다. 삼성·LG의 2배 보증을 약속한 것이다. 동시에 “전국 A/S망 콜센터를 운영하고, 수도권을 포함한 30여 개 지역에선 찾아가는 출장 서비스도 제공하겠다”고 했다. 중국 쑤저우에 본사를 둔 에코백스는 중국 내에선 1위의 로봇청소기 업체다. 올해 안에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배우 현빈을 모델로 내세운 마케팅도 시작했다. 로보락과 에코백스는 스스로를 ‘글로벌 로봇 가전 브랜드’라 칭하며, 중국 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한국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국내 가전업계, 바짝 긴장

그간 샤오미를 필두로 한 중국 가전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의 대명사로 통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싼 맛에 쓰다가, 고장 나면 또 하나 사서 쓰면 된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100만원대 프리미엄 제품에, 트렌디한 한국 소비자의 욕구를 철저히 공략하는 정공법을 펴고 있다.

일례로 중국 업체들은 한국 업체들에는 없는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내놓고 소비자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먼지 흡입용인 ‘건식’과 물걸레용 ‘습식’이 따로 구분돼 있는 한국산 제품과 달리, 이를 하나로 합친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또 로봇청소기가 자동으로 먼지통을 비우고, 더러워진 물걸레 세척까지 알아서 마치는 기능도 탑재했다. “한국 온돌 문화와 소비자들의 편의를 고려한 제품”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기능들을 탑재한 로보락, 에코백스의 최고급 제품은 가격이 각각 159만원으로, 삼성·LG의 최고급 제품 가격(100만~120만원대)을 훌쩍 뛰어넘는다.

‘외산 가전의 무덤’이었던 안방 시장에서 중국 업체가 급부상하자 국내 가전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국내 가전 업체 한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프리미엄 시장에선 아직 한국 업체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면서도 “중국 브랜드가 보급형 시장에서 양적인 성장을 하는 것까지 방어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