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재난의 진짜 원인은 교수 부족입니다.”

황철성(58)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새 정부가 출범한 10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반도체 초강대국’을 모토로 내걸고, 각종 규제 완화와 반도체 인력 양성을 외치고 있지만, 황 교수는 “인력을 키울 교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했다.

황 교수는 2014~2015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낸 반도체 분야의 석학이다. 그는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은 불안한 인력 양성 체계 탓에 위기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매년 약 1600명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관련 전공 졸업생은 650명뿐이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특히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석·박사급 인력은 매년 150여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10일 본지 인터뷰에서 "반도체 인력을 양성할 교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2019년 8월 황 교수가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김연정 객원기자

◇ 서울대 황철성 석좌교수 “반도체 대학원 지원자 몰려도 교수 없어 못 받아”

황 교수는 “학생들이 반도체를 배우겠다고 대학원에 몰려드는데 가르칠 교수가 부족해 돌려보내는 실정”이라며 “현재 내 연구실에 대학원생이 70명인데 지원자를 다 받았다면 100명도 넘었을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서울대 공대 교수 330여 명 중 반도체를 주력으로 연구하는 교수는 10여 명뿐”이라면서 “이마저도 매년 퇴임자가 나오며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에서 복수 전공·부전공·계약 학과까지 통틀어 반도체를 전공하는 학생은 2018년 78명에서 2021년 286명까지 늘었지만, 같은 기간 재료공학부의 반도체 전문 교수는 오히려 최소 3명이 줄었다는 것이다.

실제 국내 대학의 반도체 전공 교수 증원은 각종 장벽에 막혀 있다. 국립대의 경우 교수 정원을 늘리려면 교육부 허가 등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하고, 어렵사리 증원한다 해도 대학 본부에서 “반도체 교수는 논문 실적이 부진하다” 등의 이유로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한다. 황 교수는 “성숙기에 들어선 반도체 기술의 특성상 교수들이 눈에 띄는 연구 성과를 내기 어렵고, 네이처·사이언스 등 저명 학술지도 반도체 관련 논문은 다루지 않아 대학들이 반도체 교수 자리를 자꾸 줄이려 한다”고 우려했다. 황 교수는 “정부가 2016~2020년 반도체 연구·개발(R&D) 국책 사업 예산을 갑자기 없앤 것도 국내 대학의 반도체 연구 인력을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며 “현재 반도체 고급 인력풀은 바닥난 상황”이라고 했다.

◇ “반도체 학과 정원 2배로 늘리면서 교수는 안 뽑아”

황 교수는 최근 반도체 기업들이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를 우회해 ‘반도체 계약 학과’를 잇따라 도입하는데 대해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대학들과 협업해 개설하는 반도체 계약 학과는 정원 외로 학생을 선발한다. 황 교수는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반도체 계약 학과에서 교수진의 상당수는 전임이 아닌 공과대 소속 겸임교수”라며 “대학들로선 운영 기한이 정해진 계약 학과에 투입할 전임 교수를 뽑는 게 부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내년에 국내 반도체 계약 학과 정원이 현재(150명)의 2배 이상인 360명으로 늘어나면 교수 부족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반도체 계약 학과는 현재 성균관대(정원 70명), 연세대(50명), 고려대(30명) 3곳에 불과하지만, 올해 카이스트(정원 100명), 포항공대(40명), 서강대(30명), 한양대(40명)에 추가로 개설돼 내년부터 신입생을 받는다.

황 교수는 “교수 충원 없이 학생만 더 받으면 수업과 연구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입학 즉시 취직이 보장된 반도체 계약 학과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했다. 그는 “기업이 가장 원하는 것은 석·박사급 고급 인력인데 계약 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학부 졸업 후 취업을 선택하기 때문에 인력난 해소의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면서 “우수한 학생들이 곧장 기업으로 가는 탓에 교수로 양성될 인력풀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황 교수는 “대학에서 충분한 반도체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적극 지원해 반도체 연구에 주력하는 교수들이 늘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대만이 국가적으로 고급 인력 양성에 나선 만큼 우리도 빨리 시동을 걸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