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스타트업 클레온은 인물 사진 1장과 30초 분량의 음성만 있으면 1분 만에 외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실제 인물과 똑같은 가상인간을 만들어낸다. 게임업체 크래프톤이 10개월에 걸쳐 만드는 가상인간은 인간 얼굴 근육과 주름 움직임,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표현해낸다.

가상인간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제작 시간을 크게 줄여 가상인간을 대중화하는 한편, 실물 인간처럼 정교한 가상인간 제작도 가능해지고 있다. 단돈 10만원이면 안내원·상담원·뉴스 앵커 같은 가상인간을 직원으로 고용할 수 있는 시대가 눈앞에 온 것이다. 2025년이면 약 14조원 규모로 성장할 가상인간 시장 선점을 위해 AI 딥러닝 기술로 무장한 IT 대기업부터 토종 스타트업까지 속속 뛰어들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사진 한 장이면 일분 만에 뚝딱

2019년 창업한 클레온은 가상인간을 가장 빨리 만든다. 클레온의 가상인간은 컴퓨터로 대사를 입력하면 자연스러운 입 모양과 함께 미리 입력해둔 사용자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대사에 맞게 양손 모으기 등 7000가지 손동작도 해낸다. 클레온 관계자는 “국내에서 가장 빨리 가상인간을 제작할 수 있다”고 했다. 클레온은 키오스크(무인 주문기) 속 가상인간을 개발해 기업고객을 넓혀가고 있다. 현대차에는 차량용 내비게이션 안내 가상인간을, 방송사와 한국관광공사에는 아나운서와 안내원을 공급했다. 클레온 관계자는 “곧 기업마다 회사 이미지에 맞는 가상인간을 하나씩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AI 윤석열’을 만들어 유명세를 탄 스타트업 딥브레인AI는 정면뿐 아니라 측면까지 구현한 입체적인 가상인간 기술을 선보였다. 그동안 기업용 가상인간은 정면만 나오는 방식이었는데, 3D 모델링 기술을 활용해 옆모습까지 보여주며 실감 나는 가상인간을 구현한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 국영방송 CCTV에 가상인간 앵커 ‘왕’을 공급했다. 스타트업 에프엑스기어는 가상인간 아이돌 ‘나랑’을 14일 출시한다. 스마트폰 속 3D 가상인간 아이돌이 이용자 움직임에 따라 시선을 이동하고, 동작에도 실시간 반응한다.

◇솜털까지 표현하는 가상인간

대기업과 대형 연예기획사들은 한 인물을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가상인간 기술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3D 인물 제작 기술에서 앞선 게임사들이 적극적이다. 게임사들은 AI딥러닝 기술에, 평소 축적해온 게임 디자인 기술을 더해 정교하고 사실적인 가상인간을 개발 중이다. 메타버스와 K팝 신시장 공략이 목적이다.

크래프톤은 오는 6~7월 공개를 목표로 가상인간을 제작하고 있다. 햇빛 세기에 따라 동공 크기가 조절되고, 머리카락뿐 아니라 얼굴의 솜털까지 표현해 사실감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크래프톤은 가상인간에 안면 근육과 신체 모든 관절을 세세히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리깅’ 기술을 적용했다. 춤을 추고, 뒹굴면서 총을 쏘는 정교한 동작은 사람의 몸에 수백개 센서를 붙여 움직임을 재현하는 모션캡처 기술을 이용했다. 스마일게이트도 가상인간 가수 한유아를 12일 데뷔시켰다. LG전자는 가상인간 김래아를 전자제품 AI 비서로 활용하고 음반도 낸다는 계획이다.

◇돈 몰리는 가상인간 업계

당연히 가상인간 업계에 투자금도 몰리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235억원을 들여 가상인간 모델 로지를 개발한 로커스를 인수했다. 하이브와 손잡고 가상인간 가수 한유아를 만든 제작사 자이언트스텝에도 투자했다. SK스퀘어도 가상인간 수아를 만든 온마인드 지분 40%를 인수했다.

가상인간 스타트업의 성장 속도도 빠르다. 클레온은 2년 만에 기업가치가 200억원에서 1600억원으로 8배 넘게 뛰었고, 딥브레인AI도 누적투자 591억원, 기업가치 2000억원을 달성했다. 창업 육성기업 블루포인트파트너스의 황희철 투자본부장은 “사생활 문제가 없는 가상인간이 연예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K팝 영향력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AI 유망 스타트업과 자본이 가상인간 개발 분야로 몰릴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