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리디 사옥에서 만난 배기식 대표는 “넷플릭스식 구독 모델과 자체 확보 콘텐츠를 앞세워 해외 MZ세대 이용자를 공략하겠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앱 출시 1년 만에 글로벌 500만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습니다. 아직 초창기인 글로벌 웹툰 시장에서는 네이버·카카오나 리디나 출발선은 같은 셈입니다.”

15년 차 스타트업 리디는 지난 2월 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1200억원 투자를 받아 한국 콘텐츠 기업으로는 처음 유니콘이 됐다. 이때 평가받은 기업가치는 1조6000억원.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리디 사무실에서 만난 배기식(43) 대표는 “리디가 자체적으로 보유한 26만개의 웹툰·웹소설 콘텐츠와 글로벌 16국에서 1위인 웹툰앱 만타의 가능성을 크게 봐준 것 같다”며 “1~2년 내 상장에 연연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진득하게 승부를 보겠다”고 말했다.

◇리디=전자책? Z세대에겐 웹툰·웹소설 회사

리디는 국내에서는 전자책 서비스 ‘리디북스’로 유명하다. 리디는 미국 아마존처럼 전자책 판매뿐 아니라 자체 단말기도 만들며 국내 전자책 시장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하지만 배 대표는 “웹툰·웹소설 매출이 전자책을 넘어선 지 이미 몇 년 됐다”라며 “오히려 Z세대(199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생) 사이에서는 웹툰·웹소설 업체로 더 유명하다”고 말했다. 애초 그가 처음 리디를 창업해 시작했던 서비스도 만화였다.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 벤처투자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배 대표는 “2007년 아이폰 출시를 보고 모바일에서 만화를 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창업에 나섰다”고 했다. 온라인 만화 한 권을 하나의 앱으로 만들어 유료로 파는 식이었다. 당시 콘텐츠를 모바일에서 돈을 내고 본다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지만, 반응은 괜찮았다. 배 대표는 “월 1000만원 매출을 올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으나, 나중에 플랫폼 업체들과 모바일 판권 문제가 생겨 전자책으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고 했다.

배 대표는 삼성전자 출신답게 전자책 단말기도 중국에 외주를 주지 않고 직접 개발·설계해서 2015년 시장에 내놓았다. 그 이후 전자책 업계 1위가 됐고, 이를 바탕으로 웹소설·웹툰 서비스까지 확장한 것이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배 대표는 접어놨던 만화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2018년 웹소설, 2020년 웹툰 시장에 차례로 뛰어들었다. 이 덕분에 지난 4년간 연평균 성장률 40%를 기록하며 고속 성장을 이어왔다. 2020년 첫 흑자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 2000억원을 넘긴 것으로 추산된다. 그는 “MZ세대 여성 독자를 겨냥한 로맨스, 판타지 작품에 집중하고 판권을 자체적으로 보유한 것이 먹혀들었다”고 했다.

◇”해외에서 승부 볼 것”

리디는 2020년 말 출시한 웹툰앱 만타를 내세워 글로벌 웹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출시 4개월 만에 미국 구글 앱 장터에서 1위를 기록하며 북미·유럽·아시아 16국에서 웹툰 앱 1위를 지키고 있다. 글로벌 웹툰 시장에서 리디가 내세우는 강점은 바로 자체적으로 확보한 콘텐츠와 요금 부과 방식이다. 네이버·카카오 웹툰이 한국식 과금 방식인 1편당 결제라면, 리디는 넷플릭스·아마존같이 월 3.99달러(약 4850원) 월정액 구독 방식이다. 배 대표는 “해외 이용자들이 어떤 방식의 구독을 더 편해하겠느냐”라며 “리디는 주요 작품의 판권을 자체 확보하고 있어 구독 방식으로 해도 수익 배분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또한 리디 웹툰·웹소설은 해외와 국내 이용자 연령층이 겹치기 때문에 굳이 해외 공략용 콘텐츠를 따로 제작할 필요 없이 번역만 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리디의 히트작인 로맨스 판타지 웹소설 ‘상수리나무 아래’는 미국·캐나다 아마존에서 마법 판타지 1위, 이탈리아에서도 판타지 외국 도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배 대표는 “여성 취향 로맨스물은 인종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글로벌에서 통하는 장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전자책은 이제 접었느냐’라는 질문에 배 대표는 “회사 안팎에서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라며 “전자책과 웹툰·웹소설 모두 광의의 책으로 보고 있다”며 “결국 텍스트 콘텐츠를 시대 흐름에 맞게, 사람들의 선호에 맞게 변화를 준 것이 적중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