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지난해 중국 자동차 자율주행 스타트업 위슬은 1억5700만달러(약 1882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뒤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으로 등극했다. 위슬에 투자한 기관 중에는 중국 국부펀드도 있었다. 위슬에 투자금이 단숨에 몰린 이유는 중국 정부로부터 ‘작은 거인’(小巨人)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인증하고 투자까지 한 기업이라는 점이 투자자들을 불러모은 것이다.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자국 빅테크를 압박하던 중국이 기술 독립을 위해 작은 거인 육성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고성장 산업, 기술, 부품, 소재에 강점을 보이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을 선정해 정부가 집중적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2011년부터 시행된 정책이지만, 중국 정부가 최근 여기에 더욱 집중하고 있는 배경에는 2019년부터 미국과의 무역 분쟁이 본격화되며 기술 자립이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소재·장비 등 첨단 기술을 해외에서 들여오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키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에선 작은 거인 인증 받으면 뜬다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이 주최하는 당 중앙정치국회의에서 작은 거인 육성을 강조하면서 작은 거인은 중국 IT 업계와 투자자 사이에서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중국 정부는 2025년까지 100억위안(약 1조8000억원)을 투자해 1만 개의 작은 거인을 중점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2019년 5월 1차로 248개를 지정한 데 이어 2020년 11월 1744개, 지난해 7월 2930개를 선정했다.

중국 정부가 밝힌 작은 거인의 특징은 ‘전정특신’이다. 특정한 분야에 전문화(專)되어 있으며 경영능력이 뛰어나고(精), 제품·서비스의 특색(特)이 분명하며 뛰어난 혁신(新) 능력을 갖춘 중소기업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반도체나 배터리, 기업용 소프트웨어, 양자컴퓨팅, 제약·바이오 등 중국 정부가 중점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산업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음극재를 제조하는 CSECO는 전기차 부품·소재를 공급하는 우수 기업이라는 이유로, 로봇 제조사인 포워드엑스 로보틱스는 미국 특허 25개를 포함해 해외 특허 121개를 확보했다는 이유로 작은 거인이 됐다.

작은 거인에 선정되면 세금 감면이나 대출 우대, 채용 혜택, 시장 개척 지원과 같은 각종 특전을 제공받는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 유치에 유리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최근 ‘공동부유’를 주창하며 자국 빅테크 기업들을 통제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인증한 작은 거인은 일종의 보증 수표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전원 회로 장비를 만드는 창퉁 일렉트릭이라는 기술 중소기업은 지난해 작은 거인에 선정되자마자 국부펀드에서 1억위안을 투자받았고, 국내외 투자자들이 앞다퉈 추가 투자를 제안하는 상황이다.

자동차 자율주행 기술 스타트업 위슬은 작은 거인으로 뽑힌 뒤 1882억원의 투자를 받으며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등극했다. /위슬
로봇을 만드는 포워드엑스 로보틱스는 미국 특허 25개를 포함해 해외 특허 121개를 확보하는 등 기술력을 인정받아 작은 거인이 됐다. /포워드엑스 로보틱스

◇미·중 갈등 속에서 성장 가능성은 글쎄

문제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작은 거인들이 과거 알리바바나 텐센트처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느냐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의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나 견제가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미국 정부가 지난 7일(현지 시각) 중국 기업 33곳을 무더기로 수출 통제 리스트에 올리자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이 리스트에 올라간 중국 최대 바이오 위탁개발생산(CDMO) 업체인 우시 바이오로직스는 홍콩 증시에서 장중 32% 하락하면서 거래가 정지됐을 정도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기술 기업 육성에 대한 경고도 나온다.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중국 정부가 ‘실리콘밸리’ 모델을 받아들여 기업 규제나 간섭을 최소화했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해 자금을 쏟아붓고 육성하는 분야에만 창업과 투자가 몰리다 보면 필요 이상의 자본과 인력이 낭비되는 것은 물론, 실패할 때의 리스크도 그만큼 커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