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로이터 연합뉴스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관련이라면 무엇이든 투자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의 롭 리 애널리스트는 최근 벤처캐피탈 시장에서 벌어지는 크립토(가상화폐) 열풍을 이렇게 표현했다.

단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를 넘어 블록체인, NFT 기술 등을 접목한 크립토(가상화폐)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고 있다. 시장이 주목하고 돈을 쏟아붓는 것은 하루에도 시세가 수차례 급등락하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아니다. 이를 둘러싼 기술과 그 생태계다. 블룸버그는 19일(현지시각) “디지털 자산이 올해 명백하게 주류에 편입됐다”며 “디지털 자산 및 관련 프로젝트의 인기가 폭발하고 가격이 치솟으면서 가상화폐를 둘러싼 모든 실험 프로젝트가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벤처 캐피털 회사들이 암호화폐 산업에 300억 달러를 쏟아붓다/자료=피치북

◇급성장하는 가상화폐 생태계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VC(벤처캐피탈)는 가상화폐 관련 산업에 294억달러(35조원)를 쏟아부었다. 역대 최대치로, 작년까지 가상화폐 시장에 투자된 금액 전체를 합한 것보다 올 한해 투자액이 더 많다. 2020년엔 투자액이 65억달러에 불과했다. 1년 사이 4배가 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VC인 블록체인캐피탈의 스펜서 보가트 파트너는 “(크립토는) 단순한 디지털 황금을 넘어, 파이낸스 서비스, 예술, NFT(대체불가능토큰)를 적용한 게이밍, 웹3.0, 탈중앙화 소셜미디어에 적용되고 있다”며 “아직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가상화폐 거래 플랫폼인 FTX는 올 7월 10억달러의 시리즈B 투자를 순조롭게 마무리했고, 커스토디안 뉴욕 디지털인베스트먼트도 이달 중순 10억달러의 투자금을 조달했다. NFT 플랫폼인 대퍼 랩스는 지난 3월 농구계의 살아있는 전설인 마이클조단을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3억5000만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암호화 결제 인프라 제공업체 문페이는 지난달 5억5500만달러의 투자 라운드를 마감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NFT 전시회에서 한 관람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TASS 연합뉴스

◇눈썰미 좋은 VC들은 크립토 전문 투자 활성화

성장하는 스타트업과 산업 트렌드를 읽는데 탁월한 글로벌 VC들은 가상화폐 시장에 더욱 진지해졌다.

실리콘밸리 대표 VC인 세콰이어는 올해 전체 투자의 25%인 21건을 가상화폐 관련 신생 기업에 투자했다. 그동안 세콰이어는 가상화폐에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가상화폐 생태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기 시작했고, 올해는 산업 성장의 든든한 지지자가 됐다. 샤운 매퀴레 세콰이어 파트너는 “영화 매트릭스에서 등장인물들이 빨간 알약을 먹은 후 진실을 알게된 것 처럼,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작년 이후 암호화폐의 잠재력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블록체인, 탈중앙화 기술, NFT 등을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지금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NFT 기술을 통해 온라인 상에서 만드는 모든 콘텐츠의 소유권을 명확히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콘텐츠가 어디서 어떻게 유통되는지 전부 확인할 수 있다. 세콰이어의 미셸 베일헤는 “가상화폐 기술은 이미 핀테크와 소비자 앱에 있고, 기업과 의료에도 스며들고 있다”고 말했다.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공동창업자 마크 앤드리슨. /조선DB

실리콘밸리 기반 유명 VC인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도 가상화폐 투자에 매우 열성적이다. A16Z는 지난 6월 22억달러(2조6000억원) 규모의 가상화폐 투자 전용 펀드를 만들었다. 이 펀드는 A16Z가 만든 3번째 가상화폐 펀드다. A16Z는 “이 펀드를 통해 차세대 비전있는 가상화폐 창업자를 발굴하고, 가상화폐의 가장 흥미로운 분야에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6일에는 A16Z에서 가상화폐 펀드를 운영하던 대표 파트너인 캐시 하운이 A16Z를 나와 자신의 가상화폐 펀드를 만든다는 소식도 나왔다. 거대 VC에서 못했던 더 자유롭고 공격적인 가상화폐 생태계 투자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전략이다.

IT 업계에선 내년에 세계 각국의 규제로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자체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이미 가상화폐를 금지한 상태다. 하지만 이를 둘러싼 생태계는 꾸준히 성장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A16Z의 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은 지난 8월 “가상화폐 기반,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는 인터넷과 컴퓨터라는 신기술 출현을 능가하는 파급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