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복수의결권 법안이 2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연내 국회 본회의 통과가 유력해지면서, 벤처·스타트업계는 “업계 숙원이 풀렸다”며 반기고 있다.

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복수의결권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벤처기업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비상장 기업 창업자에게 주식 하나에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창업 초기 스타트업이 투자를 많이 받아 창업자 지분 비중이 낮아지더라도 창업자가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창업·벤처투자가 활발한 미국, 영국 같은 나라들은 대부분 복수의결권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는 수년 전부터 이 제도의 도입을 요구해왔으나,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재벌들의 경영권 세습에 악용할 수 있다’는 시민단체·정치권 일각의 반대 여론을 넘지 못했다. 법안을 주도한 중소벤처기업부와 여야 의원들은 “재벌이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복수의결권을 받은 기업이 자산 5조원 규모 이상으로 커지면 되면 이를 바로 해제한다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다.

국내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법안 통과를 일제히 반겼다.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 코리아스타트업의 의장을 맡은 안성우 직방 대표는 “드디어 복수의결권이 도입돼 혁신 스타트업들이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됐다”며 “창업 열기도 더욱 확산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대 국회부터 추진됐지만 지지부진하던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 법안 논의는 지난 3월 쿠팡의 미국 상장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뉴욕 증시 상장 첫날 시가총액 100조원을 기록하며 잭팟을 터트린 쿠팡이 한국이 아닌 미국 증시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복수의결권이었기 때문이다.

쿠팡이 상장 당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신청서류에 따르면, 김범석 쿠팡 의장의 지분은 10.2%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상장했다면 김 의장은 1주당 1개의 의결권만을 행사할 수 있어, 투자자들에 입김 때문에 김 의장이 제대로 경영권을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은 미국에 상장하면서 자기 지분의 29배에 해당하는 차등의결권을 인정받아 상장후 이사회에서 76.7%의 의결권을 확보했다. 그는 상장 당시 인터뷰에서 “차등의결권을 활용할 수 있는 점이 (미국행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쿠팡의 미국행 이후 재계에서는 “혁신기업을 해외에 다 뺏긴다”는 우려가 나왔고, 정치권에서도 법안 논의가 재점화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경영권 부담 없이 대규모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여건도 조성하겠다”며 “비상장 벤처기업의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국회에 협조를 구하겠다”고 했다.

복수의결권 법안은 이르면 오는 9일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기부는 “이번 법안은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나 창업주의 전횡에 악용되지 않도록 여러 안전장치를 걸었다”고 말했다. 우선 복수의결권을 상속하거나 양도하는 것은 금지된다. 또한 스타트업이 커져서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면, 1주에 1개 의결권이 주어지는 보통주로 전환된다. 또 경영 관련 주요 의결사항에선 복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소수 주주와 채권자 보호를 위한 감사 선임·해임, 이사의 보수, 이익 배당 등의 안건에는 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