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 없는 규모의 글로벌 투자 자금이 스타트업으로 몰려들면서, 올해 전 세계에서 ‘데카콘(Decacorn)’ 기업들이 쏟아지고 있다. 데카콘은 기업가치 10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성공한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몸값의 10배인 거대 스타트업을 뜻한다.

23일 스타트업 정보 서비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올해 전 세계에서 데카콘에 등극한 기업은 총 30개에 이른다. 작년(15개)의 2배이고, 재작년(5개)의 6배다. 2007년 미국의 페이스북이 사상 첫 데카콘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등장한 데카콘은 총 84개다. 이 중 증시에 상장하면서 데카콘에서 졸업한 기업이 32개로, 현재 남아있는 데카콘은 52개다. 전체 유니콘 기업이 1000개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데카콘 기업은 유니콘 중 5% 정도다.

/사진 그래픽 디자인 플랫폼 캔바, 자료=테크크런치

◇투자 자금 쏟아지며 몸값 천정부지

올해 데카콘이 어느 해보다 많이 늘어난 이유는 시장에 넘쳐나는 투자 자금 덕분이다. 올 3분기에만 전 세계 스타트업에 투자된 금액은 1600억달러(약 190조4000억원)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다. 미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작년까지만 해도 한 분기 투자 규모가 1000억달러를 넘지 못했지만 올해부터는 매 분기 투자 신기록을 쓰고 있다”고 했다.

올해 탄생한 데카콘 중 몸값 1위는 2012년 호주에서 창업한 온라인 그래픽 디자인 플랫폼 캔바(Canva)다. 캔바는 초보자도 전문가처럼 그래픽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쉬운 사용법과 강력한 협업 기능, 다양한 무료 기능으로 전 세계 6000만명의 사용자를 모았다. 포토샵 제작사이자 그래픽 프로그램 최강 업체인 어도비의 ‘최대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이 회사는 지난 9월 400억달러(약 47조6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작년 6월까지만 해도 기업가치가 60억달러 수준이었지만, 올 4월 150억달러로 크게 뛰었다. 4월 이후에도 매일 1억5700만달러(약 1870억원)씩 몸값이 올랐다. 현재 캔바는 중국 바이트댄스(틱톡)와 앤트그룹(핀테크), 미국 스페이스X 등에 이어 전 세계에서 여섯째로 몸값이 높은 스타트업이다.

미 샌프란시스코의 AI 데이터 스타트업 데이터브릭스도 올해 데카콘 대열에 합류했다. 이 회사는 기업들이 모은 수많은 데이터를 AI(인공지능)를 활용해 분석하고 기업들이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추출할 수 있도록 해준다. 클라우드(가상 서버) 시장의 최강자인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앞다퉈 투자했다. 올 2월 기업가치 280억달러를 기록했고, 6개월 후인 8월엔 몸값이 100억달러 더 오른 380억달러가 됐다.

◇1년 사이 몸값 6배 된 스타트업

영국의 핀테크 업체 레볼루트는 창업한 지 불과 6년 만에 데카콘이 됐다. 2015년 설립된 이 회사는 모바일 앱을 통해 저축과 송금 같은 은행 업무뿐 아니라 가상화폐 거래도 가능하게 한 핀테크 업체다. “레볼루트 앱에서 송금이나 계좌 이체 실수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직관적이고 안정적인 서비스가 급성장의 비결이었다. 레볼루트는 작년 7월 기업가치가 55억달러였지만, 1년 후인 올 7월엔 그 6배인 330억달러의 몸값을 인정받았다.

2년 전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에서 문을 연 가상화폐 거래소 FTX는 전 세계적인 가상화폐 열풍을 등에 업고, 지난 7월 기업가치 250억달러를 인정받았다. 중국판 인스타그램으로 불리는 샤오홍슈도 작년 상반기 기업가치가 50억달러였다가 지난 8월 200억달러까지 몸값이 뛰었다. 스포츠용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미국의 소매업체 파나틱스도 작년 기업가치가 62억달러에서 올 3월 128억달러로 2배가 됐다.

국내에서는 숙박 공유 스타트업인 야놀자와 핀테크 업체 토스가 현재 기업가치가 각각 90억달러와 74억달러로 데카콘 문턱에 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몸값이 수백억달러인 데카콘이 실제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최근 스타트업에 엄청난 자금이 몰리면서 상당한 거품이 끼었다는 것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수익 구조도 확실하지 않은 기업이 몇 달 만에 기업가치가 2~3배 되는 경우도 잦다”며 “높은 몸값을 자랑하다가 증시 상장 후 반 토막 나는 기업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