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육군이 도입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헤드셋 통합시각증강장비(IVAS). 훈련이나 전투에 나선 군인에게 증강현실 기술과 클라우드 서비스로 정보를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지난달 16일 강원도 인제군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 훈련장 하늘에 K2 소총을 장착한 소총사격드론이 날아 올랐다. 정찰 드론이 촬영한 영상에서 인공지능(AI)이 표적을 골라내면 소총사격드론이 출격해 공중에서 표적을 타격했다. M60 기관총을 탑재한 다목적무인차량은 지뢰 탐지 드론이 발견한 지뢰를 피해 달리며 표적에 사격을 퍼부었다. 이들의 엄호 속에 출동한 육군은 최종 목표 타격물에 손쉽게 접근해 임무를 완수했다. 첨단 IT 기술을 접목한 육군 전투체계 ‘아미 타이거 4.0′ 시연 현장에서 벌어진 모습이다.

전투 훈련 환경과 전쟁의 양상이 변하면서 국방 산업에도 정보통신기술(ICT)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미 장갑차와 전투기 대신 드론, 무인자율주행차, AI가 전장에 나서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과 같은 빅테크 기업이 국방 사업에 활발히 진출하면서 보잉, 록히드마틴 등 기존 방산기업들의 독점에 균열을 내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방 인공지능 TF 조직이 만들어졌다. 일명 ‘밀리테크’(군대를 뜻하는 밀리터리와 ICT를 뜻하는 테크를 합친 말)가 테크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른 것이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AI 로봇 개 '스팟'을 투입한 프랑스 생시르 사관학교의 군사 훈련. /프랑스 생시르 사관학교 트위터

◇펜타곤과 실리콘밸리가 손잡았다

지난 3월 미 육군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증강현실 헤드셋 통합시각증강장비(IVAS) 12만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218억8000만 달러(약 26조230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계약이었다. IVAS 헤드셋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기기 ‘홀로렌즈’의 증강현실 기술과 클라우드(가상 서버) 서비스를 통해 임무 수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어두운 밤에도 사용자가 헤드셋 화면에 나타나는 지도와 나침반, 각종 이미지 정보를 통해 낮처럼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다. GPS를 통해 사용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사용자의 움직임과 시선, 주변 환경까지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 사업에서 AI, 클라우드 같은 첨단기술 수요가 늘어나면서 빅테크들은 한번에 수백억 달러 계약을 할 수 있는 국방 산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보고 있다. 지난달 8일 포브스에 따르면 AI를 이용해 드론이 찍은 영상과 사진을 분석하는 미 국방부의 메이븐 프로젝트에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참여했다. 실리콘밸리와 펜타곤(미 국방부)의 거리가 좁혀지자 신생 테크 기업들도 밀리테크에 뛰어들고 있다.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이 2003년 세운 ‘팔란티어’는 지난해부터 AI와 빅데이터를 통해 목표물 추적과 공격지점 확인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고담’을 미 육군에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육군이 최첨단 전투체계 '아미타이거 4.0' 시연에서 선보인 첨단 전력들. /육군
K2 소총을 장착한 소총사격드론. /육군
M60 기관총을 탑재한 다목적무인차량. /육군

◇국방부 “AI는 병력감축의 대안”

군수산업에서 밀리테크 도입을 서두르는 것은 미국 뿐만이 아니다. 영국 육군은 지난 7월 에스토니아에서 실시한 실탄 사격 훈련에서 처음으로 인공지능을 도입했고, 프랑스는 현대차가 인수한 로봇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AI 로봇 개 ‘스팟’을 최근 군사훈련에 투입했다. 한국 국방부도 지난달 29일 열린 ‘국방 AI·무인체계 발전 협의회’에서 “AI는 병력감축의 대안”이라며 2027년까지 국산 드론 1600여대를 마련하고 인공지능과 로봇이 적용된 무인전투기를 본격 도입하기로 했다. 군 복무 기간 단축에 따른 장병 숙련도 저하 우려를 IT기술로 풀겠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