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과 그 자회사 인스타그램. /AFP 연합뉴스

13세 미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개발이 중단됐다. 페이스북이 보유한 인스타그램은 27일(현지시각) “우리는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개발이 올바른 방향인 것을 믿지만, 개발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출시 계획을 밝힌 후 미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잇따라 우려를 제기하고,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의 청소년 해악성을 인지하고서도 이를 방관했다”고 폭로하자 계획을 중단한 것이다. 아담 모세리 인스타그램 CEO는 이날 “우리는 부모들과 전문가, 정책 입안자, 규제기관의 우려를 듣고, 어린이용 인스타그램의 중요성과 가치를 입증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미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이날 “페이스북이 어린이용 인스타그램에 대해 몇 개월간 홍보 노력을 했지만, 궁극적으로 비판을 이길 수 없는 것으로 결론냈다”고 분석했다.

인스타그램. /로이터 연합뉴스

◇숱한 비판에도 밀어붙였던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은 지난 3월 13세 미만 어린이가 사용할 수 있는 ‘인스타그램 키즈’ 개발 계획을 밝혔다. 현재 인스타그램은 만 13세 이상만 사용할 수 있다. 당시 페이스북은 “아이들이 부모에게 친구들과 계속 어울릴 수 있도록 인스타그램에 가입해도 되는지 점점 더 많이 묻고 있다”며 “그래서 우리가 추가로 서비스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13세 이상만 가능한 인스타그램에 더 어린 아이들이 나이를 속이고 가입을 한다는 현실 인식도 있었다.

반발은 거셌다. 뉴욕과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 44개 주 법무장관과 검사들은 페이스북에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출시 계획을 중단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현재의 인스타그램도 사용자들의 박탈감과 물질·외모 중심주의를 강화하는 등 부작용이 있는데, 어린이용 인스타그램이 나오면 아이들이 사이버 왕따와 온라인 범죄 등에 노출돼 감정과 정신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이를 무시했다.

결정타는 9월 중순 월스트리트저널이 시리즈 기획 기사로 페이스북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입수한 페이스북 내부 문건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힌 영국과 미국의 10대 청소년 중 각각 13%, 6%가 인스타그램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아담 모세리 인스타그램 CEO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SNS를 자동차로 비유하며 “자동차 사고로 숨지는 사람이 다른 어떤 이유에서보다 많지만, 자동차는 그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라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적절하지 않은 비유라는 역풍을 맞았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 상원 상무위원회 산하 소비자보호소위원회는 오는 30일 페이스북 책임자 등을 불러 인스타그램 해악성 논란에 대한 청문회를 열기로 했다. 버티던 페이스북은 청문회 날짜가 다가오자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개발 중단을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인스타그램 내부 문서. 10대들이 인스타그램을 사용하고 정신건강이 더 악화됐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홈페이지 캡처

◇여전히 선의 주장하는 페이스북

일단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개발 계획을 중단했지만, 페이스북은 여전히 ‘선의’를 주장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의 폐해가 없고, 어린이용 인스타그램이 부모가 자녀의 SNS 사용을 더 잘 관리할 수 있는 형태라는 것이다. 지난 26일(현지시각) 페이스북은 홈페이지를 통해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와는 달리 자체 연구에 따르면 10대 소녀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신건강이 악화한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10대 소녀들이 외로움·불안·슬픔·음식물 섭취문제 등 12개 문제 중 11개 영역에서 문제가 완화됐다는 것이다.

어린이용 인스타그램에 대해서도 “이미 아이들은 수많은 온라인 서비스에 접속해 있고, 부모들은 그들 자녀에게 나이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은 이러한 부모 감독 기능을 현재 인스타그램에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아담 모세리 CEO는 “나에게도 3명의 자녀가 있고, 그들의 안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개발을 일시 중지해 이 사안을 올바르게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페이스북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만 10~12세용 어린이 인스타그램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고, 광고가 없다. 부모가 자녀의 나이에 맞는 콘텐츠를 감독할 수 있고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사용 시간을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페이스북이 성장이 정체된 SNS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어린이까지 사업 대상으로 삼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 플로리다의 캐시 캐스터 민주당 하원의원은 “담배회사가 여러가지 방법으로 젊은이들에게 은밀히 마케팅해 아이들이 담배에 일찍 빠져들게 하고, 수익을 챙긴 것과 유사한 방법”이라고 했다.

미 실리콘밸리 멘로파크에 있는 페이스북 본사 입구 모습. /AFP 연합뉴스

◇실리콘밸리의 골칫거리 된 페이스북

페이스북은 최근 기업 이미지가 최악인 상태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로 페이스북이 수백만 명의 유명인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이 왕따, 인종차별처럼 금지된 게시물을 올려도 눈감아줬고, 페이스북이 테러리스트나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악용돼도 이를 방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페이스북 사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뜩이나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 칼날이 매서운데, 페이스북이 이익을 위해 소비자 보호 등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드러나며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 모두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27일(현지시각) “페이스북은 세계 모든 곳에서 유명한 서비스이지만, 차라리 그렇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 했다”며 “글로벌 테크 기업을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페이스북이 인종 폭력과 권위주의적 학대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참기 어려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페이스북은 기업 실적에서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은 “최근 애플의 개인정보 보호 규정이 바뀌면서 애플 아이폰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타깃 광고 성과가 떨어졌다”며 “올 3분기 기준으로 기존 대비 15%가량 광고 매출이 낮게 집계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