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스타트업 토크스페이스는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심리 전문가와 연결해준다. 모바일 앱을 설치하고 간단한 질문에 답하면 문자·전화·영상통화 등 원하는 방식으로 상담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려면 시간당 100~200달러(약 11만3200~22만6400원)를 내야 하지만, 토크스페이스에선 주당 65~99달러에 불과하고 횟수 제한도 없다. 현재 토크스페이스 개인 가입자는 2만8000명, 단체 가입자 규모는 3900만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가입자가 두 배 넘게 늘어나면서 기업가치가 14억달러(약 1조584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픽=김성규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우울감과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정신건강을 돌보는 멘털 헬스(mental health) 스타트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 포브스는 “미국 성인 가운데 불안과 우울 증상을 경험했다는 사람이 2019년 11%에서 작년 42%로 급증했다”면서 “수십년간 단 2개에 불과했던 멘털 헬스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1년 만에 7개로 늘어날 정도로 투자가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정신 건강은 숨길 일” 고정관념 깨

정신과 진료와 심리 상담은 미국 의료 산업에서 가장 발전이 더딘 분야로 꼽혀왔다.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는 것 자체를 사회적 낙인으로 여기는 인식 탓이다. 최근 등장한 멘털 헬스 스타트업들은 이런 장벽을 깨뜨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담 예약을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돕고 본인의 신분이 드러나는 대면 진료를 꺼리는 사람에게는 원격진료와 상담을 제공하는 식이다. 정신과 의사 1900명을 보유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세레브럴냅스는 약물 남용, 정신적 문제로 인한 음식 섭취 장애, 불면증, 주의력 장애 같은 증상을 입력하면 최소 10분에서 최대 이틀 안에 상담 일정을 잡아준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인의 4분의 1은 정신과 전문의가 없는 지역에서 살고 있고 정신과 예약을 하려면 평균 3개월 정도 걸린다”며 “세레브럴냅스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10만명 이상의 환자를 확보했다”고 했다.

페이스북 최고재무책임자(CFO) 출신 데이비드 에버스먼이 설립한 스타트업 라이라헬스는 기업용 멘털 헬스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사가 사원 복지와 조직 관리를 위해 제공하는 심리 상담을 대행하는 것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세계 최대 바이오기업 제넨텍,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 등이 주요 고객이다. 멘털 헬스 전문가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세러피브랜즈,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온·오프라인 멘털 헬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라이프스탠스 헬스 등도 코로나 사태 속에서 몸값이 급등했다.

멘털 헬스 스타트업들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었던 유명인들을 내세워 서비스를 확산시키는 영리한 전략을 쓰고 있다. 미국의 수영 스타 마이크 펠프스는 토크스페이스와 함께 진행한 캠페인을 통해 멘털 헬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개선에 역할을 했고, 영국 해리 왕자도 올해 초 인생 코칭과 멘털 헬스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베터업의 최고영향력책임자(CIO)를 맡았다. “정신 건강은 숨길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스타트업들이 깨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도 스타트업 속속 등장

국내에서도 주목받는 멘털 헬스 스타트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출신 문우리 대표가 창업한 포티파이는 모바일 앱을 이용해 온라인 스트레스 테스트를 한 뒤 스트레스를 줄이는 맞춤형 설루션을 서비스한다. 스타트업 휴마트컴퍼니는 익명 메신저로 심리 상담을 해주고, 정신과 진료와 약물 관련 정보도 알려준다. LG화학, 혼다코리아, 제주항공 등 65개 기업이 휴마트컴퍼니의 근로자 심리 상담 서비스를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김영수 연세대 약대 교수는 “다른 모든 질병과 마찬가지로 심리적 문제나 정신 질환은 악화되기 전에 적절한 도움을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다양한 종류의 멘털 헬스 서비스는 우울증이나 불안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