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총재는 지난 3월 “데이터가 담보를 대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했다. 금융업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는 고객의 신용도를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은행들은 금융 거래 이력과 부동산 같은 담보를 활용해 왔다. 하지만 IT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테크핀 기업들은 은행보다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고객의 신용도를 평가한다. 카르스텐스 총재의 발언은 금융업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네이버, 카카오, 쿠팡은 자사 서비스 내에서 은행과의 연계 없이 대출을 해준다. 수천만명의 고객 데이터를 활용하면서 담보 없이 자체적인 신용 평가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데이터에는 검색 기록이나 위치 정보, 채팅, 교통·쇼핑·결제 등 테크핀 기업의 플랫폼 안에서 이뤄진 모든 것들이 포함된다.

테크핀 기업들은 데이터 수집과 활용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금융 당국의 관리감독을 받고 고객 데이터 활용에도 제한이 따르는 은행이나 증권사와 상황이 다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테크 기업들의 데이터 분석 능력은 사용자 본인도 모르는 걸 파악할 정도로 정교하다”고 했다. 테크핀 기업의 데이터 독점이 장기적으로 금융시장 전체의 독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IT·인터넷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테크핀 기업들이 금융산업까지 장악할 경우 특정 기업에 과도한 권력이 쏠리는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테크핀 기업들이 활용하는 데이터의 권한에 대한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이용자들의 데이터로 이익을 올리면서, 실제 데이터의 소유자들에게는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도 테크핀 기업들의 데이터 독점 문제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중국은 알리바바와 텐센트에 “금융 서비스를 계속하려면 은행과 동일한 규제를 받고 데이터 독점을 포기하라”며 압박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테크핀 기업의 금융 서비스 역시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정책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규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