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유니콘 기업이 된 센드버드의 김동신 대표. /박상훈 기자·게티이미지

한국인이 미국으로 처음 이민온 때는 100여년 전인 1903년이다. 미국 하와이에 도착한 한인들은 사탕수수 농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한인들이 미국에 본격적으로 이민온 것은 1965년 미국 이민법이 바뀌면서다. 아시아계에 대한 이민 제한이 폐지되자 많은 한국인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지금은 미국에 사는 한국인이 25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미국에서 한인들은 소수민족이다. 이민 역사도 짧다. 처음엔 주로 자영업으로 많이들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한인 사회에서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면 어느 정도 성공을 한 것으로 인지됐다. 어찌보면 힘든 배경을 버텨 자수성가한 흙수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성공은 제한적이었고 미국 주류 사회에 크게 영향을 주는 경우는 아직까진 많지 않다.

이기하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대표

이러한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최근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스타트업 때문이다. 10~20년 전 규모가 작았던 구글이나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짧은 시간에 혁신을 거듭하며 거대 ‘공룡’이 된 것처럼, 한국 스타트업들도 최근 폭풍 성장하고 있다. 최근 김동신 대표가 창업한 채팅 서비스 스타트업 ‘센드버드’가 1억달러(약 1200억원)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억5000만달러(약 1조2000억원)를 인정받아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이 되었다. 앞으로 더 많은 회사가 채팅앱을 이용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안익진 대표가 창업한 몰로코(MOLOCO)도 몸값이 2년 만에 10배가 뛰며 유니콘에 등극했다. 몰로코는 최고 수준의 머신러닝, 빅데이터 기술력을 기반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모바일 광고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정세주 대표가 혈혈단신 미국에 건너와 창업한 모바일 헬스케어 눔(NOOM)도 5억4000만달러(약 6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37억달러(4조1300억원)를 인정받았다. 눔은 조만간 미국 나스닥에 10조원 밸류로 상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팀황이 창업한 피스컬노트도 현재 1억4000만달러 가치로 IPO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스컬노트는 정부 법안, 규제 등 각종 정책과 법률 데이터를 제공하는 공공정보제공 및 컨설팅 기업이다. 이외에도 북미 웹툰 플랫폼 타파스와 웹소설 플랫폼 래디시가 각각 약 6000억원(5억1000만달러), 약 5000억원(4억4000만달러) 가치로 인수가 됐다. 한인들의 미국 이민 역사에 없었던 엄청난 성공인 것이다. 모두 1~2달 사이 벌어진 일이다.

안익진 몰로코 대표. /몰로코

그럼 어떻게 갑자기 이러한 큰 성공을 한인들이 미국에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일까?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터넷과 모바일로 많은 사업이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모든 사업이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행해졌다. 미국에 사는 한인에겐 불리한 상황이었다. 영어가 능숙치 않은 아시아인으로서 영업과 마케팅을 하기엔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은 직접 만나지도 않고도 사업을 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전에 미국에서 인터넷 사업을 했는데 고객을 만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인터넷을 통해 비대면 사업이 가능해진 것은 한인들에겐 큰 기회다.

두번째 이유는 한인들이 가지는 성격적 특성이다. 다른 민족에 비하여 한인들은 여러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대표적인 것이 성실성이다. 20년 넘게 미국에 살면서 보는 한국인들은 정말로 성실하다. 일을 상대적으로 굉장히 열심히 한다. 또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있다. 한국인들은 성격이 정말 급하다. 식당에 들어오는 손님한테도 ‘어서오세요’라고 말한다. 빨리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러한 빨리빨리 정신이 인터넷 시대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빠르게 바뀌는 기술과 사용자 기대를 빨리빨리 정신이 대응을 하면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고객이 서비스에 불만족한 반응을 보이자 한인 창업자들이 밤을 세우면서 고치고 하루만에 대응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한인들은 또 생각보다 욕심이 많고 도전정신이 있다. 미국에서 나도 깃발을 꽂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하고 도전한다. 이러한 한인들의 장점이 최근 십분 발휘되고 있다고 본다.

눔 서비스 모습

한인들이 최근 미국에서 성공을 거두는 세번째 이유엔 점차 크게 형성된 미국 내 한인 테크 커뮤니티를 들 수 있다. 유학 온 학생들이 미국 테크 회사에 남아있는 등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는 한인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한인 네트워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다른 민족에 비해서는 적지만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에서 일하다가 창업에 나서는 한국인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영어를 어느 정도 잘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와 투자 기회를 살피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시작한 창업자에게 투자하는 한인 투자 회사들도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있는 프라이머사제 파트너스도 이렇게 한인들이 시작한 미국 내 20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다. 앞으로 더 많은 투자 회사들이 한인 창업자에게 투자하길 바란다.

나는 미국에서 이러한 한인 창업자들의 성공이 이제 시작일뿐이라고 본다. 앞으로 미국 내 더 많은 한인 창업자가 생길 것이고, 지금 유니콘이 된 스타트업들은 10조원 이상의 가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 성공한 한인 창업자들은 자기의 노하우를 후배 창업자들에게 알려주고 도와줄 것이다. 지금도 그러한 서로 돕는 네트워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82스타트업'이란 한인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공한 한인 창업자들은 앞으로도 미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