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중국 가상화폐 거래소 후오비에 ‘시바이누(犬) 코인’이라는 신종 가상화폐가 상장됐다. 이 코인의 제작 목적은 단 하나. 올 들어 140배 넘게 급등한 도지코인을 뛰어넘는 ‘도지코인 킬러’가 되겠다는 것이다. 장난 삼아 이 코인을 만든 개발자는 “수조(兆)개의 코인을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사용처가 하나도 없다. 애초에 활용성이나 내재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거래소 업비트 라운지에 비트코인과 알트코인(비트코인을 뺀 다른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뉴시스

하지만 지난 8일 상장과 동시에 시세가 급등했다. 이 코인이 상장하던 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시바이누 코인 관련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이유 말고는 급등 이유를 찾기 힘들다. 0.000003달러로 상장한 이 코인의 가격은 3일 만인 11일까지 10배 넘게 올랐다. 시총은 14조2810억원 규모로 커졌다. 전 세계 3000곳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 패션 기업 ‘갭(시총 14조9498억원)’과 비슷하다.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이어지면서 실질적 가치가 없는 소규모 코인들에 묻지 마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일부 투자자 사이에서는 소규모 코인을 ‘돈 복사기’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그만큼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높다는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지난 7일(현지 시각) 보고서를 통해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가상 화폐) 급등 같은 과잉 매수 현상은 거품 붕괴의 신호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체 불분명 ‘잡코인’, 시총은 네이버·페라리급

현재 상위 20위권에 이름을 올린 알트코인은 대부분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잡코인’이다. 예컨대 시총이 58조4900억원 규모로 6위인 ‘에이다’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단점을 보완한 ‘3세대 코인’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수년 전 일본에선 에이다로 바로 현금을 뽑을 수 있는 ATM도 설치되며 도쿄올림픽에서 활발하게 사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18년 가상화폐 폭락 사태를 겪으며 개발과 활용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그런데도 에이다의 시총은 현재 한국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시총 57조3279억원)와 비슷하다. 지난해 매출 5조3041억원, 영업이익 1조2153억원을 올렸고 65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과 데이터 조각에 불과한 에이다의 전체 가치가 숫자상으로는 같다는 것이다.

상위 10위 코인 vs 글로벌 기업 시총. /그래픽=양인성

한때 ‘빠른 전송과 저렴한 수수료’를 내세워 증권가에서 널리 사용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던 ‘리플’도 현재는 이름만 남은 코인이다. 전 세계 화폐를 몇 초 내로 송금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당초의 개발 계획도 사실상 진행이 멈춘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도 리플의 시총은 55조6500억원으로 스포츠카의 대명사 페라리(55조1927억원)를 추월했다.

미국 대형 호텔 체인 힐턴 월드와이드와 비슷한 규모의 ‘폴카닷(시총 38조4200억원)’, 영국 최대 통신 업체 브리티시텔레콤과 비슷한 ‘비체인(14조9182억원)’,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와 비등한 ‘솔라나(12조3255억원)’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차세대 플랫폼 구축, 전기 공급망 혁신 같은 명분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았지만 실제로 출시된 서비스나 기술은 전무한 채 코인 거래만 이뤄지고 있다.

◇가상화폐 시장의 절반 이상이 알트코인

11일 오후 6시 기준 전 세계 가상화폐 시총의 합은 2조4030억달러(약 2689조원)에 달한다. 그중 비트코인을 제외한 알트코인의 시총은 1조3835억달러로 전체의 58%다. 알트코인 시총 비율이 올 1월 초 약 30%에서 28%포인트나 급증했다. 비트코인이 너무 비싸다고 여긴 투자자들이 일확천금을 노리고 실체가 불명확한 알트코인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알트코인을 주식시장의 ‘잡주’와 동급으로 봐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사업 모델과 뚜렷한 성적표가 필수지만, 알트코인은 투자만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사기)’의 위험이 항상 있다는 것이다. 가상화폐 업계 관계자는 “대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코드 몇 줄 추가하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알트코인들은 언제든 무더기 상장폐지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