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 실리콘밸리에서 최신 IT 기술 트렌드와 빅테크, 스타트업 등을 조명하는 ‘실밸레이더’ 입니다. SaaS(싸스)라는 말을 한번 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서비스로의 소프트웨어(Software as a Service), 즉 구독형 소프트웨어를 의미합니다. 매달 일정 금액의 사용료를 내고 클라우드를 통해 소프트웨어를 실시간으로 이용하는 것이죠. 최근 SaaS 시장은 펄펄 끓는 용광로 같습니다. 클라우드 시장 성장과 함께 구독형 소프트웨어도 보편화하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작년 전 세계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 시장 규모는 2700억3300만달러(300조8000억원)인데, 이 중 SaaS가 1027억9800만달러(114조5000억원)를 차지했습니다.

/그래픽=김현국

SaaS는 그동안 촘촘한 영업망과 막대한 고객관리로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 중심의 소프트웨어 시장을 뿌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이제 제대로 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면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도 클라우드를 통해 얼마든지 고객을 유치하고 매출을 올릴 수 있죠. 특히 SaaS는 기술력은 있지만 마케팅이나 판매 부분에 약했던 한국 스타트업에 큰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미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탈을 운영하는 실밸레이더의 고정 필자인 이기하 프라이머사제파트너스 대표가 SaaS 시대 한국 스타트업의 기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기하 프라이머사제제파트너스 대표

☆한국 스타트업에게 불어오는 SaaS의 기회

SaaS 비즈니스를 쉽게 설명할 때 내가 드는 비유가 있다. 미용실 이야기다.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 자체를 사는 사람은 없다. 필요할 때마다 돈을 내고 이용을 하면 된다. 만일 이런 서비스가 없다면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고 비효율적일 것이다. 소프트웨어도 한 번에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돈을 내면서 사용하는 것이 SaaS다. 매월 지불할 수도 있고, 사용한 양만큼만 지불할 수도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많은 SaaS 회사들이 생겨나고 증시에 상장하고 있다. B2C(소비자 대상 사업) 기업보다 SaaS 모델의 B2B(기업 대상 사업) 기업 상장 사례가 더 많다. 덩치가 큰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SaaS 모델로 변환 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본래 워드, 엑셀 등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구독형이 아닌 단품형으로 판매했다. 하지만 이것을 SaaS 모델로 바꿔 매월 사용료를 지불하게 했다. 사티아 나델라 CEO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일반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클라우드 기반 SaaS 회사로 진화시킨 것이다. 나델라가 CEO가 된 2014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7배 성장했다. 이 회사 시총은 이제 약 2조 달러에 달한다. 전 세계에서 애플 다음으로 시가총액이 큰 회사다.

MS는 오피스 등 SaaS의 강점을 기반으로 플랫폼 및 서버까지 솔루션을 제공하는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OS 전략을 취하고 있다.

최근엔 높은 몸값을 인정받은 한국 SaaS 스타트업도 탄생했다. 한국인 창업자가 시작한 센드버드(Sendbird)는 지난 4월 6일 10억5000만달러(1조17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1억달러(1100억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다. 스테드패스트파이낸셜, 이머전스캐피털과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등이 이 회사에 투자했다. 센드버드는 기업 대상으로 채팅 및 영상 대화 서비스를 SaaS 형태로 제공한다.

딜리버리히어로, 레딧, 텔라닥, 헤드스페이스 등 글로벌 기업들이 센드버드의 채팅 및 영상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다. 한국 기업 중에는 넥슨, 엔씨소프트, 국민은행 등이 사용 중이다. 필요한 채팅앱을 해당 회사에서 직접 만들어 고객을 응대할 수 있지만, 개발자 고용 비용, 개발 후 관리 비용 등을 감안하면, 센드버드 SaaS를 사용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센드버드 채팅 플랫폼 사용자는 월간 1억 5000만명에 이른다.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1억달러 투자 유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센드버드 외에도 이곳 실리콘밸리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한인 창업 SaaS 스타트업이 많다. 협업 도구를 만들고 있는 스윗(Swit), 자연어 이해 인공지능 솔루션을 만드는 올거나이즈(Allganize), 음악 데이터 분석 및 시각화를 만드는 차트메트릭(Chartmetric) 등은 연간 수십 억원의 매출을 내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센드버드 김동신 대표가 한인 창업자로 미국에서 시작해 SaaS 비즈니스로 1조원 가치의 회사를 만들고, 한국 SaaS 스타트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SaaS가 한국 스타트업에 큰 기회의 문이 되는 셈이다.

그동안 한국인이 미국에 와서 기업을 상대로 소프트웨어 팔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SaaS 비즈니스가 커지면서 많은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지 인터넷을 이용해 만나지 않고도 웹사이트를 통해 마케팅을 하고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 고객은 웹사이트를 통해서 제품 정보를 얻고, 클라우드를 통해 제품을 다운 받고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보편적 특성도 SaaS 비즈니스에 장점으로 작용한다. 이전에는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있거나 새로운 버전이 나왔을 때 제품을 바로 배포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젠 제품이 클라우드에 있기 때문에 즉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속전속결 한국인의 특성은 이 부분에서 매우 큰 강점으로 작용한다. 제품에 문제가 생겼고, 고객 의뢰가 왔을 경우 한국 스타트업들은 밤을 새워서라도 문제를 빠르게 해결한다. 한국 기업들과 한인 창업자들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올 것이다.

SaaS(싸스), 구독형 소프트웨어.

앞으로 더 많은 영역에서, 이전에 사용했던 제품이나 서비스 등이 SaaS 로 바뀔 것이다. 의료, 법, 세무, 회계, 인사, 노무, 보험, 상담 등 많은 산업의 기업들이 회사의 효율과 확장, 그리고 보안을 위해 SaaS 제품을 쓰게 될 것이다.

최근 한국의 개발자의 몸값이 뛰고 있다. 나는 이것이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이 개발자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고 그만큼 우리나라 개발자의 기술력이 상승해 더 좋은 SaaS 회사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또 개발자 몸값이 높아지면 기업들이 직접 개발자를 채용하는 것보다 SaaS 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예전엔 소프트웨어 구입비용이 비싸면 회사가 직접 개발자를 채용해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지만, 이제는 외부의 SaaS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한국은 삼성, 현대, LG 등 제조 대기업이 하드웨어를 세계에 수출하는 나라였다. 앞으로는 SaaS 열풍을 타고 소프트웨어 강국으로도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