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던 자율주행차에 대한 장밋빛 환상이 흔들리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IT 기업들이 잇따라 상용화 일정을 5~6년씩 미루고 있으며, 아예 개발을 포기한 곳도 있다. 2일(현지 시각)에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자율주행차 기업인 구글 자회사 웨이모의 존 크래프칙 최고경영자(CEO)가 “내 인생의 정점이었던 웨이모에서 물러나겠다”며 돌연 사임했다. 상용화 일정이 계속 늦어지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자율주행차가 단시일 내에 현실화된다는 예측 자체가 과장이었다고 지적한다. 제한된 조건이 아니라 실제 도로를 자유자재로 다니는 자율주행차는 아직 먼 미래의 일이라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 그래픽=김성규

◇2025년 이후나 가능할 듯

자동차 전문가로 2015년 구글에 합류한 크래프칙은 자율주행 업계를 이끌어온 상징적 존재다. 2016년 구글의 자율주행사업부를 웨이모로 분사해 본격적인 상업화에 나섰고, 2017년 애리조나에서 세계 첫 자율주행택시 시범 서비스를 실현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재규어(자동차 제조), 리프트(차량 공유) 등 글로벌 기업들을 모아 자율주행산업협회를 설립한 것도 크래프칙이다. 그는 사임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웨이모의 현 상황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이 목표였던 웨이모의 자율주행택시 서비스는 미뤄지고 있고, 조 단위 누적적자가 쌓이고 있다. 1750억달러(약 197조원)까지 치솟았던 웨이모의 기업 가치는 현재 1000억달러 수준으로 40% 넘게 폭락했다.

미국 CNBC는 “크래프칙의 퇴장은 자율주행에 대한 희망이 과장됐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거의 모든 기업에서 현실화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 자율주행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센서나 카메라의 정확도,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의 성능, 실시간으로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끊김과 지연이 없는 통신 등 모든 기술 분야가 자율주행차의 안전을 담보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웨이모뿐 아니라 다른 자동차·IT 기업들의 상용화 계획도 줄줄이 지연되고 있다. 2018년 자율주행택시를 출시하겠다던 GM은 2025년으로 계획을 수정했고, BMW·포드도 2025년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올해 자율주행 서비스 출시를 자신했던 인텔 자회사 모빌아이는 올 초 “2025년 자율주행용 반도체칩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2014년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를 처음 시작한 애플은 지난해 3만263km의 자율주행 테스트를 하면서 233km마다 차선 이탈 문제가 발생할 정도로 기술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웨이모와 함께 업계의 선두 주자로 꼽히던 차량 공유 기업 우버는 ‘수익성이 없다’는 주주들의 압박에 지난해 말 사업부를 매각했다. 현재 자율주행 상용화가 곧 가능하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정도다. 머스크는 지난해부터 “곧 자율주행차 서비스를 출시한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CNN은 “머스크의 자율주행은 자동차 업계에서 말하는 자율주행과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테슬라의 목표가 사람의 개입이 최소화된 자율주행 기능이지, 운전자가 필요 없는 완전한 자율주행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법적·윤리적 문제도 산재

자율주행 상용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자율주행차 개발이 활발한 미국에서도 애리조나·캘리포니아·네바다 등 일부 주에서만 자율주행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을 정도로 관련 법규 제정이 더디다. 보험 회사들도 자율주행 테스트 모델에만 특약을 걸어 한정된 보상만 해주고 있다. 2018년 3월 애리조나에서 발생한 우버 자율주행차의 대인 사망 사고의 경우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만 1년 6개월이 걸렸다. 소프트웨어 오류인지, 차량 하드웨어 문제인지, 탑승한 관리자의 조작 실수인지 등 기존 사고보다 조사해야 할 사항이 엄청나게 많은 데다 명확한 판단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차두원 모빌리티 연구소장은 “한정된 지역에서의 제한된 운행이 아니라 상용 서비스가 되려면 나라 안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법적·제도적 동의가 필요하다”면서 “위급한 상황에서 운전자나 보행자 중 누구를 보호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가 같은 윤리적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