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언론사들의 뉴스로 거대한 이익을 남겨온 자국 테크 기업을 상대로 칼을 빼들었다. 언론사들이 거대 플랫폼과의 뉴스 저작권료 협상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초당적인 법안을 내놓은 것이다. 구글·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공룡들이 언론사 뉴스를 트래픽 유인 수단으로 이용해 이익을 올리면서도 정작 언론사에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법안의 도입 취지이다.
◇언론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
12일(현지 시각) 미 하원 사법위원회는 지난 10일 발의된 ’2021 언론경쟁 유지법'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주 1회 이상 기사를 작성하는 미국내 모든 신문·방송·인터넷매체가 연합해 구글·페이스북 등 뉴스로 이익을 남겨온 플랫폼 기업과 협상에 나설 수 있다. 이들이 함께 콘텐츠의 규모를 키우면, 구글·페이스북과의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다는 취지다. 현재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전문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언론사에 저작권료 대신 광고 수익 일부만 나눠주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데이비드 시실리니 민주당 의원은 “언론의 위기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시민 생활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민주당의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은 물론 존 케네디·미치 매코넬 상원의원과 켄 벅 하원의원 등 공화당 소속 의원들도 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 켄 벅 의원은 “이 법안이 디지털 왕(王)들의 왕관을 벗김으로써,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시장 자율에 맡기고 정치권과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왔다. 외국 정부가 자국 테크 기업을 대상으로 규제를 추진하면 무역 보복을 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거대 테크 기업의 횡포로 미국 언론 산업이 피폐해지자 정치권이 더 이상 이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청문회에서 공개된 미국 언론의 현실은 심각했다. 2005년 494억달러(약 56조1431억원)였던 미국 신문 광고 시장은 2018년 143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구글의 광고 매출은 61억달러에서 1160억달러로 치솟았다. 지난 15년간 미국 신문사 2100개가 사라졌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이런 현실이 테크 공룡들이 언론 기사를 부당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미 의회의 법제화 움직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유럽과 호주”라고 보도했다. 유럽연합은 2019년 저작권 규정을 변경해 구글·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이 언론사에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호주도 플랫폼이 언론사와의 저작권료 협상에 실패하면 정부가 개입하는 법안을 마련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법안이 도입되면 미국 언론사들이 구글·페이스북에서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MS, 구글·페이스북 공격
이번 청문회에서는 거대 테크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법안을 지지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현재 미 언론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디지털 광고와 검색을 구글이 독점하면서 제대로 된 수익 배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MS는 이번 청문회뿐 아니라 지난 1월에도 호주의 뉴스 저작권 법안을 공개 지지하며 구글·페이스북의 반대편에 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MS가 구글·페이스북이 처한 어려움을 활용하고, 자사의 검색엔진 빙(Bing)을 대안으로 띄우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세계 검색시장에서 구글은 92.05%, 빙은 2.69%를 차지했다. 구글은 이에 대해 “MS가 인터넷이 작동하는 방식까지 부수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