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가상화폐 거래소에 가상화폐 시세 전광판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비트코인이 돌아왔다(Bitcoin is back).”

지난 1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비트코인 가격이 올 들어 90% 상승한 1만3848달러를 기록했다”며 이렇게 보도했다. 가상화폐 광풍이 불었던 지난 2017년 연말의 상황이 재현되는 듯,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보름 정도가 지난 17일 오후 2시, 비트코인 가격은 1만6624달러(약 1840만원)를 돌파했다. 올 1월 1일(7196달러)과 비교하면 131% 급등했다.

비트코인은 2017년 12월 2만달러(약 2200만원)를 넘었다가 2018년엔 한때 3000달러(약 330만원)대로 폭락했다. 비트코인이 1800만원대에 들어선 건, 2년 10개월 만이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의 거래량도 폭등했다. 빗썸에 따르면 17일 총거래량은 375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늘었다. 하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대표 가상화폐는 호황이지만, 다른 가상화폐들은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며 “섣부른 투자는 위험하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2년 10개월 만에 1800만원 돌파

비트코인 가격 추이

비트코인은 올해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에 따른 경기 불황의 반사이익을 받았다. 올해 세계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면서, 시중에 늘어난 돈이 가상화폐 시장으로 몰려든 것이다. 지난 5월에는 약 4년 주기로 이뤄지는 비트코인 반감기(半減期)가 있었다. 비트코인은 신규 생성되는 물량을 주기적으로 줄이도록 설계된 가상화폐다. 돈은 몰리는데 비트코인 신규 공급은 줄어드니, 가격 상승의 압력이 커진 것이다.

가상화폐 업계에선 “이번 상승은 과거와 다르다"며 “무엇보다 각국 금융 당국이 비트코인을 보는 시각이 바뀌었다”는 말이 나온다. 가상화폐를 ‘불법 투기’로 봤던 과거와 달리, 제도권 편입을 인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미국 은행 규제 당국인 통화감독청(OCC)은 미국 은행의 가상화폐 수탁 서비스를 허용했다. 골드만삭스·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은 비트코인 투자에 관심 있는 VIP 고객을 선점하려고 관련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영국·독일·싱가포르·일본 등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상화폐의 실제 사용처도 늘었다. 지난 12일엔 전 세계 사용자 3억5000만명을 보유한 결제 기업 페이팔이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페이팔 이용자들은 페이팔에서 비트코인·이더리움·라이트코인 등을 거래하거나, 2600만 개에 달하는 페이팔 가맹점에서 결제할 수 있다. 지난 7월엔 세계 최대 가상화폐거래소인 바이낸스가 비자카드와 가상화폐 자산을 연동해 실생활에서 현금처럼 금액을 결제할 수 있는 ‘바이낸스카드’를 유럽에서 출시하기도 했다. 자오창펑 바이낸스 CEO(최고경영자)는 “가상화폐가 생각보다 확산이 느린 이유는 진짜 돈처럼 쓰지 못해서였다”며 “가상화폐를 진짜 돈처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가상화폐 위상도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

/AFP연합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가상화폐에 훈풍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反)비트코인이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정권이 가상화폐에 친화적일 것이란 기대감이다. 바이든 정부의 재무장관 후보로 꼽히는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방준비제도 이사는 가상화폐를 잘 아는 인물로 알려졌다. 바이든 당선인의 금융 정책 인수팀을 이끄는 게리 겐슬러 전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위원장도 유명한 ‘친(親)가상화폐’ 인사다. 여기에 바이든 정권에서 장기 보유 주식 양도세를 2배가량 높이는 정책을 준비하고 있어, 가상화폐가 ‘대체 자산’으로 주목받을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비트코인 가격 상승이 단기적인 현상이라는 평가도 여전하다.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최근 야후파이낸스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중국처럼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디지털 화폐(CBDC)가 발행되기 시작하면, 비트코인과 같이 민간에서 발행된 코인은 설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며 “(비트코인을 제외한) 다른 수천 개의 코인 대부분은 제멋대로인데다, 가치가 빠르게 곤두박질치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