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 화웨이에 이어 텐센트에 대한 제재에 들어간다. 오는 20일부터 미국 기업들이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와 거래(transaction)를 못 하도록 금지하는 것이다. 텐센트의 주력 서비스인 위챗도 미국에서 쓸 수 없도록 퇴출한다. 위챗은 카카오톡과 같은 스마트폰 메신저다. 한국으로 치면 화웨이는 중국의 삼성전자이고, 텐센트는 네이버와 카카오, 엔씨소프트를 모두 합친 인터넷 공룡이다. 이번 제재로 최근 2~3년간 내수 기업의 한계를 넘기 위해 글로벌 게임·클라우드 시장을 공략하던 텐센트는 발목이 잡혔다. 미국의 제재가 게임까지 번진다면, 매출도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텐센트 제재가 애플, 월마트, 포드차 등 미국 기업들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상공회의소 상하이 지국의 컬 깁스 회장은 최근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위챗 사용 금지는 (미국 기업에) 매우 파괴적인 일”이라며 “위챗 안에서 사용하는 간편 결제 서비스인 ‘위챗페이’ 없이는 중국 시장에서 미국 기업이 살아남을 길이 없다”고 했다. 화웨이에 먹혔던 ‘거래 금지’라는 제재가 텐센트에는 100% 먹히지 않는 것이다.

◇구글과 대적할 중국 텐센트 제국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6일 텐센트 제재안에 서명했다. 시행일은 45일 뒤로 정했다. 이에 따라 애플의 아이폰에선 위챗을 쓰지 못하고, 월마트 등 미국 업체가 위챗 등에 광고를 실을 수 없다. 명분은 위챗으로 미국인 개인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보안 문제지만, 실제론 중국 테크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막으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텐센트

텐센트의 위챗은 중국 내 이용자가 11억명이고, 해외 이용자도 1억명에 달한다. 위챗페이라는 간편 결제를 앞세운 글로벌 핀테크 시장의 강자이기도 하다. 핀란드의 수퍼셀이나 미국의 에픽게임스 등 주요 게임 개발사에 투자하거나 인수한, 세계 톱3 게임업체이기도 하다. 화웨이가 하드웨어의 중국 1위라면, 텐센트는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분야의 대표 주자인 셈이다.

또 텐센트는 세계 800여 개 기업에 투자한 큰손이다. 테슬라(보유지분율 5%)·유니버설뮤직(10%)·스냅(12%)과 같은 미국 대표 기업도 포함된다. 국내에선 카카오(6.4%)와 넷마블(17.55%), 크래프톤(13.2%) 등에 투자했다. 국내 인터넷 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텐센트는 중국 테크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 구글과 경쟁할 수 있는 잠재적 도전자”라고 말했다.

◇미 기업도 피해 볼 가능성

미국의 화웨이 제재 때는 마땅한 반격 카드가 없던 중국이지만, 텐센트는 다르다. 애플·포드차·월마트·디즈니·골드만삭스 등 미국 기업들은 백악관과 화상회의에서 “위챗과 교류를 제한하면 중국에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폭스뉴스는 “미국 나이키가 중국 현지 상점에서 위챗페이로 결제를 받지 못하면 독일 아디다스와 경쟁에서 밀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상황을 이해하는 핵심은 위챗이다. 위챗은 단순한 스마트폰 메신저가 아니다. 위챗페이라는 결제 기능을 탑재했고, 공과금 납부, 배달 주문, 택시 호출 등 온갖 기능의 미니 앱 300만 개를 갖춘 수퍼 앱이다. 예컨대 중국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물건을 사고, 택시를 부르는 일이 모두 위챗에서 이뤄진다. 미국 기업은 중국 소비자와 만나는 최고의 접점을 잃는 셈이다.

당장 애플은 직격탄을 맞을 위기다.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인 궈밍치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위챗이 삭제되면 아이폰 판매량은 25~30%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 소비자가 위챗 없는 불편한 아이폰을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