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자산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은 최근 단점을 보완하는 응용기술이 발전하고 현물 ETF(상장지수펀드) 허용으로 기관투자자 참여가 가능해져 투자 자산으로 안착했다고 봅니다. 장기적으로 가격은 오르겠지만, ‘급등 기회 놓칠라’ 하는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의 추격 매수는 경계해야 합니다.”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는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이번 비트코인 급등은 2021년 코로나 팬데믹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시드오픈리서치는 가상 자산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AI(인공지능)가 전통 금융과 갖는 접점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며, 김 대표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낸 재무 관료 출신이다. 그는 2017년 1차 비트코인 버블(거품) 당시 범정부 대응 TF(태스크포스) 단장으로 일하며 가상 자산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김용범 해시드오픈리서치 대표는 지난 25일 인터뷰에서 "미국은 우량 가상자산 시장에서 패권을 강화하고 있다"며 "한국도 이 흐름을 타야 한다"고 말했다./김기훈 기자

- 최근 비트코인 가격 급등의 원인은?

“비트코인이 2009년에 등장한 이후 2017년, 2021년, 2024년 등 모두 3번 급등이 있었다. 2017년엔 위안화 가치 급락으로 중국 부자들이 비트코인을 대거 매수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2021년엔 팬데믹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이 막대한 규모로 돈을 풀어 모든 자산 가격이 상승한 데다, 비대면 활동으로 온라인과 가상 현실 시대가 앞당겨지면서 비트코인이 주목받았다.

올해 3번째 급등은 과거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먼저, 2022년 이후 가상 자산 거래소 파산 등 업계 내부의 대형 악재가 어느 정도 정리됐다. 둘째, 비트코인 채굴에 대한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오는 4월로 다가오면서 공급 물량 감소에 따른 가격 상승 기대감이 형성됐다. 셋째,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허가하면서 기관이나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 자산으로 쉽게 보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3차례 버블

- 과거의 거품과 다르다는 뜻인가?

“2017년 1차 버블 때 비트코인 최고 가격 1만9600달러는 버블 시작 전 평균 가격 250달러의 약 80배였다. 남해해운, 튤립, 닷컴 등 금융 역사상 유명한 버블은 30배 정도에서 붕괴했다. 지금 시각으로는 1만9600달러가 적은 금액이지만, 거품 배수로 보면 지금보다 2017년이 더 컸다. 역사상 최대의 금융 버블이었다.

비트코인 버블의 특이한 점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 유용성이 별로 없는 혁신 기술이나 제품의 버블은 대개 한 번에 끝나고 사그라든다. 이에 반해 비트코인 버블의 반복은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즉 새로운 장부 기록 기술이 지난 10여 년 동안 큰 문제 없이 잘 작동하며 사용자와 씀씀이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 기술의 특성이 뚜렷하다. 기록 기술의 혁신은 인류 문명의 비약적 발전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오지 않았나.”

가상자산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은 응용기술이 발전하면서 화폐 대용물로 사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5일 뉴욕 시내의 한 비트코인 인출기./로이터 연합뉴스

- 비트코인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나?

“전 세계 해외 이주 노동자 가운데에는 스마트폰을 통해 비트코인이나, 법정 통화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을 본국에 송금하는 사람이 많다. 수수료가 10분의 1로 줄어들고 송금 시간도 대폭 단축된다. 또 라이트닝 네트워크 등 응용 기술이 등장해 비트코인의 유통 속도가 빨라지고 오디널스 같은 소유자 새김 기능도 추가되면서 비트코인이 디지털 음원, 부동산, 채권, 예금 거래에서 지불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커졌다. 또 현물 ETF가 허용되면서 비트코인이 금과 은을 대체할 수 있는 가치 저장 수단이 됐다. 비트코인은 처음에는 전자 지급 수단으로 등장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결제 기능보다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인 ‘디지털 금’으로 각광받고 있다.”

비트코인 더 오를까

- 향후 비트코인 가격은?

“단기적 가격 흐름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지금이 자금 유입의 초기라는 것은 확실하다. 현물 ETF의 등장으로 연기금 등 보수적 기관투자자들이 조금씩 보유 비율을 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자산 중에서 시가총액 1위는 금(14.5조달러)인데, 비트코인(1.34조달러)은 7위인 은(1.43조달러)과 규모가 비슷해졌다. 기관투자자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예전보다 가격 변동성은 줄어드는 반면, 위험 자산 중 달러 표시가 아닌 비트코인을 통해 포트폴리오 분산 효과를 노리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장기적으로는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를 것이다. 그만큼 비트코인이 주요한 금융 투자 자산으로 확고하게 정착했다고 본다.

다만 투자자들이 급등 기회를 놓칠까 봐 무분별하게 추격 매수에 나서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가상 자산별 속성을 잘 파악한 뒤, 거품이 꺼진 후에도 손실을 감당할 만한 금액의 범위 내에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같이 기술적 유용성이 검증되고 투자 자산으로 안착한 대표 종목을 사서 보유하는 것이 안전하다. 단기 수익보다는 새로운 기술에 참여한다는 생각으로 장기 투자해야 한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위협하지 않을까?

“가상 자산이 기존 금융 시스템을 대체하지는 못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가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제활동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CBDC)를 만들어 은행 간 대규모 자금 거래를 분산 원장 방식으로 처리하고, 소매 금융 시장에서는 민간 스테이블 코인이 널리 쓰이는 나라가 늘어날 것이다. 전통 금융과 가상 자산이 결합하는 것이다.”

독점 강화하는 미국

-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미 가상 자산 업계에서는 국경을 초월한 영역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탈중앙 방식의 거래, 대출, 보험 등 디파이(DeFi) 금융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생소한 영역에서 변칙적인 방식의 금융 활동이 성행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당국이 가상 자산 시장을 인정하고 빨리 제도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미 국내에서 600만명 이상이 가상 자산 활동 계좌를 가지고 있으므로, 주식이나 채권처럼 투명한 공시와 가치 평가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권한 밖의 일이라고 외면하고 있다가 나중에 중국의 ‘그림자 은행’처럼 터지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전 세계의 약 25%인 반면, 미국 달러가 전 세계 외환 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60% 정도 된다. 그런데 가상 자산 중 각국 통화 가치와 연동되어 움직이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에서 미국 달러가 차지하는 비율은 98%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미국 달러의 패권이 더 강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의 원화도 더 늦기 전에 이 흐름을 타야 한다.”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이 투자자산으로 안착되면서 전통금융과의 관계를 조율할 금융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뉴스 1

-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블록체인과 가상 자산을 활용한 기업의 다양한 노력과 인프라 서비스의 등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융 당국은 당장 눈에 보이는 가상 자산 시장 건전화와 투자자 피해 방지라는 중요한 과제를 금융 체계 건전화 관점에서 대비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기반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산업 경쟁력 강화에 대비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서비스 전쟁은 이미 조용하지만 아주 체계적으로 시작됐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시아가 시장 잠재성을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는 가상 자산의 허브가 되기 위해 뛰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국회, 정부, 기업이 체계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산업을 육성하고 투자하고 있다.”

한국 떠나는 한국 기업들

- 한국은?

“국민들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경험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해야 할 대기업들이나 혁신을 이끌어 나가야 할 스타트업들은 국내에서 지원을 받기는커녕, 하면 안 된다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해외로 나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몇 년 뒤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등 해외 기업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이 재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기업과 인재들이 활약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