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위산업체들은 3~5년간은 현재의 실적 성장세를 이어갈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세계시장에서 계속 성장하려면 우주·양자·AI(인공지능)·드론·고출력 레이더·신소재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해야 합니다.”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은 22일 인터뷰에서 “방위산업체는 단순한 무기 수출 업체가 아니라 그 나라의 첨단 기술과 제조업 능력의 집약체”라며 투자자들이 이러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전 청장은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 당시 방위사업청 근무를 시작했으며, 지휘정찰사업부장, 사업관리본부장, 방위사업청 차장을 거친 뒤 2020년 12월~2022년 6월 첫 내부 승진 방위사업청장을 지냈다. 현재 국방과학연구소(ADD) 정책자문위원으로 있다.

강은호 전 방위사업청장은 인터뷰에서 "K-방산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계속 성장하려면 우주·양자·AI(인공지능)·드론 같은 4차 산업혁명의 최첨단 기술을 접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김기훈 기자

- 글로벌 시장에서 ‘K방산’의 위상은?

“세계 각국이 자국의 무기 수출액은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문제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18~2022년 평균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4%로 9위인데, 지난 5년간 무기 수출이 급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만 보면 수출액은 173억달러(약 23조원) 정도로,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에 이어 5대 강국에 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50년간 방산 비리 또는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쓰면서도 연구 개발 현장에서 목숨까지 바쳐가며 현장을 지킨 연구 개발자와 기업인들이 노력한 결과다.”

그래픽=김현국

- K방산을 이끄는 기업들은?

“세계 방산 시장에서 수요가 많은 부분은 최첨단 무기 체계인 F-35 전투기나 극초음속 미사일이 아니라, 그 아래 단계인 중상위급 무기 체계다. 우리가 수출하는 플랫폼 중심 무기 체계, 즉 전차, 장갑차, 자주포, FA-50 전투기, 재래식 잠수함과 전투함정, 천궁2와 같은 지대공 미사일 체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상당한 첨단 기술을 내포하면서도 강한 제조업 기반이 받쳐줘야 생산이 가능하다. K2 흑표 전자를 생산하는 현대로템, K9 자주포와 레드백 장갑차를 생산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천궁2 지대공 미사일을 만드는 LIG 넥스원과 한화시스템스, FA-50 전투기를 만드는 한국우주항공, 잠수함과 수상함을 만드는 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스 등이 K방산을 이끌고 있다.”

현대로템이 생산하는 K2 흑표 전차는 미국과 독일의 전차와 함께 세계 정상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K2 흑표 전차의 전차포 사격 장면./육군

- 한국 방산업체들이 앞으로도 잘나갈까?

“지난 50년간 축적된 힘이 발휘되기 때문에 향후 3~5년 정도는 현재 성장 속도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 다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새로운 과학기술의 흐름을 수용해 무기 체계에 융합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예를 들어 어떤 기술인가?

“4차 산업혁명에서 등장하는 AI(인공지능), 자동화 로봇, 스텔스를 잡을 수 있는 레이더 기술, 양자 암호 통신 등 각종 첨단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첨단 소재 기술이다. 우리가 집중해서 연구 개발해야 하는 분야다. 이런 기술을 적용하면 예컨대 전차의 센서도 모두 첨단 디지털 센서로 바뀌고 AI가 탑재될 것이다. 탑승 인원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게 된다.”

한국 방산업체들이 지속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려면 첨단 기술의 총아인 AI(인공지능)도 기존 무기체계에 접합해야 한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진은 2024년 1월 21일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에 마련된 삼성전자 갤럭시S24 체험공간인 '갤럭시 스튜디오'./연합뉴스

- 투자자들이 주목할 무기 체계 변화의 흐름은?

“ 세 가지다. 첫째, 우주가 이미 중요한 전략 공간으로 등장했다. 우주에서 전장을 감시하고 지휘 통제하는 데 필요한 발사체, 소형 인공위성, 우주 통신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각광받을 것이다.

둘째, 유인기와 무인기(드론)가 결합된 유무인 복합 무기 체계가 주목받고 있다. 예컨대 조종사가 탄 전투기 1대가 드론 100대를, 유인 전차 1대가 무인 전차 3~10대를 이끌고 함께 기동하는 식이다. 이런 체계가 가능하려면 무인기, 이차 전지, 첨단 센서, 근거리 무선 통신 장비 제조 업체의 참여가 필요하다.

셋째, 첨단 신소재 사용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전차는 대당 55t이 넘는데, 철 대신 탄소섬유 복합 소재를 재료로 사용하면 무게가 20~30% 정도 줄면서 그만큼 소형화하거나 기동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반면 방호 기능은 4~5배 늘어난다. 특히 무인기는 가벼우면서도 강도가 높아야 한다.”

우주가 방위산업의 주요 경쟁 분야로 등장했다. 사진은 지난 2023년 12월 4일 국내 기술로 개발한 고체연료 추진 우주발사체(로켓)에 상용 지구관측 위성을 탑재해 발사하는 모습./한화시스템

- 이런 흐름을 수용할 기업이 한국에 충분한가?

“현재 K방산을 이끌고 있는 대기업 외에도, 창원, 구미, 대전, 전주 등에 첨단 센서 부품, 무인기, 소형 위성, 통신 부품, 신소재, 방산 2차전지 등을 제조하는 기술력을 갖춘 중소 업체가 분산되어 있다. 많은 중소기업이 이미 상장돼 있다.”

- 방산주 투자자들이 주목할 점은?

“실질적인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지를 공시 등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 발전 추세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다만 방산 분야의 특성상 단기적 시각보다는 중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방산 업체는 무기 체계를 개발하는 데 7~12년, 수출 협상을 하는 데 최소 2~3년이 걸린다. 해외 수주가 일어나도 자금이 1~2년 뒤에야 유입될 수도 있다. 한번 수출이 이뤄지면 20여 년간 수출액의 4~5배에 달하는 유지 보수 계약도 함께 체결한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수출 계약 건건에 출렁이는 주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중장기 시각에서 큰 흐름을 타는 기업을 골라야 한다.”

방산 수출은 계약 이후 2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이어지므로 주식 투자자들은 긴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진은 2024년 1월 22일 하나은행 서울 본점 딜링룸./연합뉴스

- 한국 방위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첫째, 한국의 방산 기술 수준이 과거 후발국에서 이제 선도국으로 바뀌고 있다. 첨단 기술 개발 과정에서 실패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제도와 예산 지원 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둘째, 새로운 첨단 기술을 산업 현장에 구현할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전북대, 부산대, 경북대에서 국내 최초로 학부 과정에 첨단방위산업학과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또 첨단 국방 기술 개발 전문가인 국방과학연구소와 군 전문가들이 퇴직 후에도 계속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취업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 이들의 전문성을 국내에서 활용하지 못한다면 최악으로 전문 인력의 해외 유출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셋째, 방산 수출뿐 아니라, 첨단 군사 기술을 민간에 이전해 민간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기술 주도성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가 이 작업을 잘하고 있다. 국방 연구 개발 초기부터 민수화 활용 방안도 동시에 검토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