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 여파로 촉발된 자금 경색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형 증권사를 지원하기 위해 최소 4500억원 규모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기로 했다. 당초 ‘제2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 조성안도 거론됐지만, 최종적으로 SPC 형태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2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래에셋·한국투자증권 등 9개 대형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방안에 합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CEO는 “대형 증권사들이 각각 돈을 내고 SPC를 설립해 중소형 증권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매입해주기로 했다”며 “자기자본 3조원 이상인 9개 증권사가 각각 500억~1000억원씩 내 설립한 뒤 향후 상황에 따라 조절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PC 출범 시기는 다음 달 중순 이전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금시장 위기가 엄중하고 다급하기 때문에 최대한 출범을 서두를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중소 증권사에 대해 얼마나 PF ABCP를 매입해줄 것인지 등의 구체적 계획은 추가 논의를 통해 정해질 전망이다.

당초 대형 증권사들은 이른바 ‘제2 채안펀드’를 조성해 중소형 증권사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금융 당국이 최대 20조원 규모의 채안펀드를 만들어 유동성을 지원하는 것과 별도로, 업계 차원의 자구책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같은 업계 경쟁사를 직접 지원하는 형식이 돼 ‘배임’ 소지가 있다는 말이 나왔다. 펀드 방식은 운용사를 지정해야 하는데, 특정 금융사 계열 운용사가 돈 관리를 할 경우 의사 결정 과정에 잡음이 발생할 우려도 제기됐다. 이 때문에 SPC를 꾸려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으로 전해졌다. SPC는 통상 주식회사나 유한회사이기 때문에 출자 비율만큼 발언권이 보장된다.

SPC에 중소형 증권사들까지 참여시키는 방안도 일부 논의됐으나, 지원을 받아야 할 중소형 증권사들까지 포함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있어 최종적으로는 대형 증권사들만 참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협회는 “유동성 위기가 증권 업계 전체로 확산되지 않도록 자금 여력이 있는 대형 증권사들의 시장 안정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