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락한 주가로 수천만 원씩 반대매매 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습니다.”(개인 투자자 A씨)

올 들어 코스피가 급락하면서, 이른바 ‘빚투(빚내서 투자)족’이 대출을 받는 조건으로 증권사에 담보로 맡긴 주식 가치가 떨어져 강제로 처분되는 반대매매 물량이 작년보다 6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매매는 주식을 시세보다 싼 가격에 팔기 때문에 투자자가 막대한 손실을 보는 한편, 주가를 그만큼 더 끌어내리는 효과도 가져온다.

자료=금융감독원·한국거래소 그래픽=김성규

17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자기자본 기준 국내 상위 5곳 증권사(미래에셋·한국투자·삼성·KB·NH투자증권)의 올 1~8월 신용융자 거래 반대매매 규모는 444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작년 동기(2809억원) 대비 약 58% 증가한 수치다. 월별로 보면, 코스피가 올 들어 가장 큰 폭(-13.2%)으로 떨어졌던 지난 6월 반대매매 물량이 1312억원으로 작년과 올해를 통틀어 가장 많았다. 재작년부터 작년 상반기까지는 증시가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에 반대매매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증권사들 공개 꺼리는 신용융자 반대매매, 6월 폭락장에 1312억으로 최대

신용융자 거래란 투자자가 자기 돈 외에 증권사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자기 돈 1만원에 증권사 돈 1만원을 빌려 시가 2만원의 B 주식을 한 주 샀다고 가정하자. 만약 B 주식 주가가 급락해 1만4000원 밑으로 떨어지면, 담보 비율(대출금 대비 담보 주식 가치 비율)이 140%를 밑돌게 된다. 이럴 경우 증권사는 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이 주식을 시세보다도 낮은 가격에 팔아버리는데, 이것이 신용융자 거래 반대매매다. 최악의 경우 증권사가 대출금을 회수하게 되면 투자자는 자신의 원금(1만원)을 대부분 날릴 수도 있다. 반대매매 기준이 되는 담보 유지 비율은 통상 140% 내외다.

반대매매엔 ‘신용융자 거래’ 외에 ‘미수 거래’로 인한 것도 있다. 미수 거래란 지금 당장 돈이 없지만 사흘 뒤에 내는 조건으로 주식을 사는 일종의 ‘단기 외상’인데, 이때 사흘 뒤에도 지불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반대매매가 일어난다. 통상 미수 거래로 인한 반대매매 규모가 신용융자보다 크다. 그런데 미수 거래 반대매매 규모는 금융투자협회 등을 통해 상시 공개되는 반면, 신용융자 반대매매는 통상 비공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미수 반대매매는 시장 호황 여부를 떠나 단타 거래가 많을 때 커지는 반면, 신용융자 반대매매는 증시 불황일 때 늘어난다”며 “증권사 입장에선 투자자가 빚을 감당하지 못해 터지는 신용융자 반대매매 규모를 공개하기가 껄끄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반대매매 물량이 이번에 윤 의원실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시총 1위 삼성전자, 반대매매도 가장 많아

올해 1~8월 신용융자 반대매매가 가장 많이 이뤄진 종목은 삼성전자로 총 161억원어치가 반대매매 됐다. 증권사 5곳의 상위 종목을 합산한 결과다. 빚투족이 삼성전자 주식을 담보로 많이 맡겼고, 주가 하락으로 그만큼 많은 강제 처분을 당했다는 의미다. 17일 마감된 삼성전자 주가는 올 초 대비 27.7%나 하락한 5만6600원이다. 카카오(89억원), SK바이오사이언스(68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반대매매는 주가 하락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규모가 커지면 추가 급락의 ‘원인’이 된다. 증권사가 주식을 빨리 처분하려 헐값도 감수하기 때문이다. 반대매매는 통상 매일 오전장 초반에 일어나는데, 이때 급매도 물량이 증가하면 주가는 자연히 하락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증시 하락과 반대매매는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며 악순환을 부른다”고 했다.

올해 증시가 폭락세를 보이자 상당수 증권사들은 반대매매 물량을 줄이기 위해 자체 개선안을 내놨다. 지난 7월부터 담보유지 비율을 소폭(10%p 내외) 낮추거나 반대매매 유예 기간을 하루 연장한 것이다. 윤창현 의원은 “담보유지 비율을 추가 인하하는 등 증시 안정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