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세계 주요 수출국인 한국·중국·일본 등 동북아 3국이 ‘환율전쟁’을 시작했다. 한·중·일 환율전쟁은 1994년과 2015년에 이어 세 번째이다. 한국은 미국에 발맞춰 금리를 인상하며 환율 안정화 정책을 쓰고 있는 반면, 중국과 일본은 미국과 달리 금리를 인하하거나 저금리를 유지해 환율 상승을 유도하는 상황이다.

일러스트=김현국

환율 정책은 각국 기업들의 수출 가격경쟁력과 직결된다. 환율 정책에 실패하면 2~3년 뒤 수출 기업들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지고 달러 부족과 기업 도산으로 이어지면서 1997년처럼 외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외환 전문가들은 2020년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엔저(환율 상승) 정책을 써 왔던 일본에 맞서, 중국이 올 들어 위안화 가치 급락(환율 상승)을 용인하고 있는 점을 주목한다. 한국은 미국에 동조하고, 수출 경쟁국인 중국·일본과는 반대로 가면서 한·중·일 환율전쟁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평가한다.

◇먼저 시작한 일본

한·중·일 3국 가운데 고환율 정책에 가장 먼저 시동을 건 것은 일본이다. 일본 엔화는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2020년 1월에 1달러당 108.7엔으로 시작해 1년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2021년 이후 상승하기 시작, 지난 6월 20일 현재 135엔을 기록하면서 1년 반 동안 무려 31%나 올랐다. 같은 기간에 중국 위안화가 2.9%, 한국 원화가 19% 오른 것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상승률이다. 올 들어 상승률은 더욱 가파르다. 엔화는 올 들어 6월 20일까지 17.3%나 급등, 중국(5.4%)이나 한국(8.3%)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한·중·일 기업이 같은 수출 제품을 놓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때 한국과 중국의 기업이 일본 기업에 비해 환율 상승분 차이만큼 가격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뜻이다.

일본 엔화 환율이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오른 것은 일본 내 장기 불황에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자 일본 중앙은행이 돈을 대규모로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3월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시점에,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돈 푸는 금융완화 기조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 바람에 엔화 환율은 1달러당 130엔을 넘어섰다. 경제 분석가들은 일본이 지난 10년간의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총리의 경제부흥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활력 회복에 실패했기 때문에 금융완화 기조를 되돌리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환율 하락을 예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추격 나선 중국

중국 위안화는 코로나 사태 2년 동안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안정세를 유지했다. 지난 2020년 1월 초에 1달러당 6.96위안에서 2021년 말에는 6.37위안으로 하락했다. 코로나 사태 동안에도 중국 제품에 대한 해외 수요가 여전했고, 중국 경제가 견조하고 위안화가 강세를 보이자 해외 투자자들이 중국 주식과 채권을 사기 위해 달러를 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들어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현재 위안화 환율은 1달러당 6.72위안을 기록, 올 들어 5.4% 상승했다. 특히 지난 4월에는 8일간 무려 4%나 오르면서 전 세계 외환시장을 충격에 빠트렸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의 위안화 환율 급등 추세를 보면 2015년 ‘2차 환율전쟁’ 당시의 외환시장 패닉(공황)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위안화가 급등하는 이유는 중국이 부동산 시장 위축과 코로나 재발에 맞서 경기 부양을 위해 대출우대금리(LPR)를 인하하는 등 미국과 다른 방향의 통화 정책을 추구, 환율 상승을 용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이앤 톰 애널리스트는 “중국 외환 당국이 환율 급등을 원치는 않지만, 중국 경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완만한 상승은 용인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줄타기하는 한국

한국의 원화 환율은 지난 2021년 이후 1년 반 동안 일본 엔화보다는 상승률이 낮았고, 중국 위안화보다는 높았다. 한국 수출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일본 경쟁 업체보다는 낮아지고, 중국 업체보다는 높아졌다는 뜻이다. 문제는 중국의 위안화 환율이 최근 들어 급등하고 있고, 일본 엔화 환율도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중국·일본과 달리 미국의 금리 인상에 발맞춰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쓰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021년 8월에 0.5%이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5차례 올려 1.75%로 만든 상태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5월 금리 인상 때 “앞으로 수개월간 물가를 중심으로 통화 정책을 운용할 것”이라며 기준금리가 연말에는 연 2.25~2.50%에 달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추가로 올리면 한국도 따라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하지만 한은이 금리를 올리면 원화 환율은 중국 위안화나 일본 엔화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수입 물가는 잡을 수 있지만, 수출 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뜻이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1997년 외환위기에서 보듯이 금리보다 환율 급변동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선집 풍요로운경제연구소장은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수출 기업의 경쟁력 유지가 경제 정책의 최우선 위치에 놓여야 한다”고 말했다.


中이 시작한 ‘1차 환율전쟁’, 韓 외환 위기로 번져

1990년 이래 한국·중국·일본 간에는 모두 두 차례의 환율전쟁이 있었다. ‘1차 환율전쟁’은 28년 전인 1994년 시작됐다. 1993년 집권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만성 무역흑자를 내는 일본의 팔을 비틀면서 엔고(엔·달러 환율 하락) 정책을 폈다. 이 와중에 장쩌민 중국 주석은 1994년 위안화 환율을 대폭 끌어올렸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에 따라 수출 부문 일자리를 늘리려는 조치였다. 위안화 환율은 1993년 1달러당 평균 5.7위안에서 이듬해에 8.6위안으로 무려 51%나 올랐다. 중국이 움직이자 일본이 미국의 동의를 얻어 엔화 환율을 올리기 시작했다. 1994년 1달러당 99.7엔에서 1998년 130.8엔까지 계속 상승했다.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환율도 이 기간 동안 상승하긴 했다. 그러나 단번에 폭등시킨 중국이나 수년간 차근차근 올린 일본에 비해 상승 폭이 작았다. 그 결과 수출 업체들이 중국·일본 제품에 밀려 국제 경쟁력을 상실했다. 달러 창고가 부실해지면서 1997년 태국, 인도네시아, 홍콩, 한국을 잇따라 강타한 동아시아 외환 위기의 태풍을 피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다.

‘2차 환율전쟁’은 2012년 말 집권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대규모 엔저(환율 상승) 정책을 시작하며 불을 지폈다. 이후 중국도 경기 부양과 수출 확대를 위해 2014년 말 금리를 수차례 내리고, 2015년 8월에는 단 3일 만에 위안화 환율을 4.5%나 올리며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다. 해외투자자 자금 1조달러가 중국을 빠져나갔지만, 알리바바와 샤오미 등 중국 수출 기업들이 순풍에 돛을 달고 고용을 늘렸다.

한국은 ‘1차 환율전쟁’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을 위해 저환율 정책을 썼다. 이후 수출 기업이 어려워졌으나 정부의 환율 지원에 기대지 말고 기술경쟁력을 높이도록 요구했다. 그러다 외환 위기를 맞았다. 이 경험 덕택에, 11년 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이명박 대통령은 ‘제2의 외환 위기’를 막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고수했다.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직전 노무현 정부에서 고평가된 원화 가치를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맞게 정상화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