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환 원스토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9일 기업공개(IPO)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장 계획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틀 뒤인 11일 상장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원스토어 제공

이달 상장 예정이던 원스토어와 태림페이퍼가 11일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지난 6일에는 SK쉴더스가 상장 일정을 중단하는 등 올 들어 기업 6곳이 기업공개(IPO)로 자금을 모으려던 계획을 접었다. 최근 글로벌 금리 인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증시가 약세를 보이면서 “지금 상장해봐야 원하는 만큼 값을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장한 새내기 기업들 주가도 거품이 빠지는 중이다. 지난해부터 올 4월 사이 상장한 기업 155곳 중 64곳(41%)의 주가가 공모 가격을 밑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풀린 돈이 자본시장으로 밀려든 덕분에 지난해 유례없는 상장 붐이 일었지만, 금리가 다시 오르고 경기도 둔화 조짐을 보이자 고(高)평가된 신규 상장 기업들의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거품 꺼진다… 새내기주 43% 공모가 밑돌아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올 4월 사이 코스피 시장에 신규 상장한 기업은 23곳, 코스닥 시장은 132곳으로 2015년 이후 가장 많았다. 초저금리 속에 투자자들이 돈을 싸 들고 증시로 몰려들면서 코스피 지수가 2000에서 3000선을 뚫고 올라가던 때여서, 자금력 부족한 기업들이 이참에 시장에서 투자금을 모으려 줄줄이 시장에 들어섰다.

그러나 부작용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일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 신규 상장사의 27%, 코스닥은 45% 기업 주가가 공모 가격보다도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두 시장을 합쳐 41%의 새내기 기업 주가가 현재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전반적으로 주가가 약세이기도 하지만, 애초 상장 때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형성했던 부작용이 지금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작년 8월 상장 당시 공모가를 49만8000원으로 책정해 고평가 논란이 일었던 게임업체 크래프톤은 주가가 공모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수조 원대 청약 증거금을 모은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도 현재 주가가 공모 가격에 근접한 상태다.

◇신규 상장 철회도 속출

최근 들어 주가지수가 급락하면서 기업공개 시장 분위기도 손바닥 뒤집히듯 돌변했다. 올 1월 현대엔지니어링을 시작으로 보로노이, 대명에너지, SK쉴더스에 이어 11일 원스토어와 태림페이퍼까지 기업 6곳이 상장 계획을 철회했다. 기존 눈높이로는 투자자들을 모으기 만만찮은 환경이 됐기 때문이다.

9~10일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을 한 태림페이퍼는 공모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희망 공모 가격(1만9000~2만2000원) 하단보다도 공모가를 낮춘다면 주문을 넣겠다는 기관이 있었으나, 회사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9일 최고경영자(CEO)가 기자회견까지 열어 “상장 철회는 없다”고 자신했던 원스토어도 시장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 채 이틀 만에 상장 계획을 접었다. 수요 예측에 참여율도 저조했고, 참여 기관 대부분이 희망 공모 가격(3만4300원~4만1700원) 하단보다 훨씬 낮은 2만원대가 적정 가격이라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원스토어는 지난해 57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지만,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과 글로벌 빅테크 기업 구글을 비교 대상으로 삼아 고평가 논란이 일었다.

이런 분위기는 올해 안에 상장을 계획 중인 다른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모빌리티, CJ올리브영, 현대오일뱅크, 컬리, 쏘카, 11번가 등 시가총액 조(兆) 단위의 대어급 기업들이 줄줄이 상장 대기 중인데, 상장을 연기하거나 공모가를 확 낮추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증시 상장과 퇴출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준석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의 성장성을 확보하는 측면에서 상장을 많이 시키는 정책을 쓸 수는 있겠으나, 주식시장의 내실을 위해서라면 퇴출도 많이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적 대비 높은 평가를 받아 입성한 기업들이 추후 좀비 기업으로 남으면 시장 전체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