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News1

지난 달 29일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 가계대출 실무진들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회의를 열었다. 금감원은 이 자리에서 “현행 대출 규제가 소득이 적은 젊은 청년층에게 불리하니 이를 해결하겠다는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 있었다”며 은행권과 개선방안이 있는지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과도하고 복잡해진 대출 규제를 풀기 위해 금융 당국과 은행권이 본격적인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소득을 기반으로 대출 한도가 정해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현행대로 유지하되, 소득이 적은 젊은 층이 불리하지 않도록 장래소득 인정 기준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지역·집값과 무관하게 LTV(주택담보인정출비율) 70%를 적용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을 구체화하기 위한 묘수(妙手) 찾기에 들어간 것이다. 복잡한 대출 규제를 단순화하면서도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간 형평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장래소득 기준 30대 중후반에 유리해질 듯

윤 당선인과 인수위원회 측은 그 동안 DSR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왔다. LTV와 DSR을 동시에 완화할 경우 1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 부채가 더 폭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LTV만 완화할 경우 고소득자들이 돈을 더 빌려 초고가 주택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날 회의에서 DSR의 일괄적인 완화보다 2030세대에게 적용되는 장래소득 인정 기준을 높이는 방안이 집중 논의된 이유다.

그래픽=송윤혜

지금도 은행들이 대출을 심사할 때 젊은 층의 장래소득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30대 중반 이후에는 장래소득이 거의 안 늘어나도록 설정돼있다는 것이 문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실제 집을 구매하는 연령대는 20대나 30대 초반보다는 30대 중반이 많다”며 “장래소득 계산 방식이 30대 중후반에게 유리하도록 수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에 따르면 20년 이상 만기인 대출을 받을 경우 20~24세 연령층은 만기까지 소득이 평균 76.3% 증가할 것으로 가정한다. 25~29세는 47.7%, 30~34세는 23.9%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장래소득을 결정한다. 하지만 35~39세는 소득이 0.5% 감소한다고 가정한다. 30대 중후반 연령대는 장래소득이 더 늘어날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1900조 육박 가계부채 폭증 우려

주택 실수요층인 청년들에 대한 대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먼저 가계부채 폭증 우려에 대비해야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국내 가계부채는 1862조원에 달한다. 1년 전보다 134조원(7.8%)이나 증가한 규모다. 2020년말 가계부채는 1728조원으로 역시 전년보다 127조원(8.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2018년과 2019년 가계부채 증가액이 각각 86조원(5.9%), 64조원(4.2%)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가세가 더 빨라진 것이다. 무엇보다 2019년 12월 금융 당국은 15억원 초과 초고가주택에 대해서는 주담대를 전면 금지하고, 9억원 초과 15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는 LTV 적용 비율을 20%로 낮추는 초강수를 뒀지만 증가세를 꺾지 못했다.

현행 대출규제를 그대로 적용받는 서울에서 2020~2021년 2년간 거래된 15억원 초과 아파트는 1만5938채, 9억원 초과 15억원 이하 아파트는 4만4836채에 달한다. 만일 윤 당선인 공약대로 LTV를 70%까지 완화할 경우 과거 2년간 거래실적을 감안할 때 서울 아파트에서만 40조원이 넘는 대출 수요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주택 가격이 2년전에 비해 크게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LTV 규제 완화만으로도 큰 폭의 가계부채 증가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이날 회의에서는 15억원이 넘는 초고가주택에 대한 대출도 허용하되 상한을 두는 방안도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소득자들에게 제한 없이 대출이 나간다면 형평성 문제 뿐만 아니라 집값의 과도한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길 수 있다”며 “주택 가격이 안정될 때까지는 대출 상한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DSR·LTV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비율. 소득에 비해 과도한 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다.LTV(주택담보인정비율)는 주택을 담보로 돈을 빌릴 때 인정되는 자산가치의 비율. 예컨대 10억원짜리 집을 구입할 때 LTV가 70%라면 7억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