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에 투자할 때 ‘구주(舊株) 매출’ 비중이 중요한 투자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구주 매출이란 기업이 상장할 때 기존 주주가 갖고 있던 주식(구주)을 공모주 투자자들에게 파는 것을 말한다. 새로 주식을 발행해 공모주 투자자들에게 파는 ‘신주 발행’과 다르다. 구주매출 비중이 높은 공모주의 경우 공모 자금이 회사로 유입되지 않고 기존 주주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에 통상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져있다.

실제 구주매출 비중이 높은 공모주가 상장 뒤 주가 흐름이 지지부진한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 열기가 식은 공모주 시장 분위기까지 더해지며 높은 구주매출은 수익률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를 모았던 일부 종목들의 경우 구주매출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사전 수요예측 단계에서 기관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아 상장이 철회하거나 연기되기도 했다.

◇구주매출 비중 높아 부진했던 공모주

지난 8월10일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게임업체 크래프톤의 주가는 지난 달 10일까지 3개월 간 공모가(49만8000원)를 밑돌았다. 최대 주주 장병규 의장의 특수관계법인(벨리즈원)과 임직원들의 구주매출이 전체 공모액 대비 35%에 달한 것이 주원인으로 지적됐다. 최근 실적 호조에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 지수 편입으로 주가가 반짝 올랐지만, 여전히 공모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구주매출 비중이 50%였던 렌트카 업체 롯데렌탈은 지난 8월 코스피 상장 석 달 여 만에 공모가(5만9000원) 대비 38%나 하락했다. 롯데렌탈은 상장 후 단 한 번도 공모가를 웃돈 적이 없다. 구주매출 비중이 43%였던 코스닥 제약사 HK이노엔의 1일 주가(5만1000원)는 지난 8월 공모가(5만9000원) 대비 14% 떨어진 상태다.

기업들은 통상 상장할 때 신규로 주식을 발행해 회사에 필요한 자금(납입자본금)을 마련한다. 상장 기업은 이 자금으로 신 사업에 투자해 기업가치와 주가를 높임으로써 주식을 사준 주주들에게 보답한다. 반면 구주매출의 경우 주식을 갖고 있는 소유주만 바뀔 뿐 회사로 신규 자금이 들어가지 않는다. ‘상장을 통한 신규 자금 조달→신사업 투자→기업가치(주가) 상승’이라는 선순환 고리가 깨지는 것이다.

구주매출이 아예 상장의 발목을 잡는 경우도 생긴다. 해운 업체 에스엠상선은 지난 달 예정된 코스닥 상장을 잠정 연기했다. 앞서 명품 핸드백 ODM(연구개발생산)업체 시몬느액세서리컬렉션도 코스피 상장을 철회했다. 두 회사 모두 높은 구주매출 비중에 따른 기관들의 수요예측 부진이 이유였다. 시몬느는 공모 물량의 80%, 에스엠상선은 50%를 구주매출로 책정했다. 시몬느의 경우 재무적 투자자(FI)인 블랙스톤PE(사모펀드) 물량, 에스엠상선은 기존 최대 주주인 삼라마이다스와 삼라·티케이케미칼 등 최대 주주 관계 회사들의 물량이었다. 두 기업은 가치가 1조~2조원 대로 점쳐진 공모주 대어였던 만큼 상장 철회에 따라 투자자들의 수익 기회도 사라졌다.

◇구주매출 꼭 나쁜 건 아냐

그러나 높은 구주매출이 반드시 기업공개(IPO) 실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업황, 구주 소유주 등에 따라 오히려 수익이 날 수도 있다.

지난 5월 상장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는 구주매출 비중이 60%에 달했지만 상장 후 50%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구주의 소유주가 최대주주인 SK이노베이션이라 경영권·주가 안정화 차원에서 당장 매물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상장한 차량 부품 업체 명신산업도 구주매출 비중이 66.7%에 달했지만 현재 공모가(6500원) 대비 4배 높은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주요 고객사 가운데 테슬라 등 글로벌 전기차 업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1위 중고차 매매 플랫폼 케이카(구주매출 비중 91%) 역시 온라인 시장이 확대되며 지난 10월 상장 후 공모가 대비 주가가 36% 올랐다.

구주매출이 초기 투자자 및 창업자를 위한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창업자들의 구주매출이 흔히 이뤄진다. ‘기존 주주 배불리기’보다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인식된다. 메타(페이스북) 대표 마크 저커버그와 공유 숙박업체 에어비앤비의 브라이언 체스키 최고경영자(CEO)도 IPO 과정에서 각각 3000만주·63만주를 구주매출로 내놓은 바 있다.

☞구주매출

기업 상장 시 신규 발행 주식이 아니라 기존 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공모로 매각하는 것이다. 구주매출 비율이 높은 공모주의 경우, 공모 자금이 회사 운영에 쓰여 주가 상승에 기여하는 대신 기존 주주에게 돌아간다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