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시중 은행 외벽에 주택담보대출, 개인신용대출 등 대출 상품 홍보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연합뉴스

대기업 차장 송모(43)씨는 8일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마이너스 통장에 적용되는 11월 대출금리를 문자메시지로 통보받았다. 연 3.35%였다. 송씨가 5개월 전인 지난 6월 금리를 확인해보니 2.6%였다. 그는 “금리 상승기가 시작됐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까지 빨리 오르는 건 겪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가 가을 들어 급격히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은행들은 “시장 금리가 상승세인 데다 금융 당국으로부터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라는 강한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가격(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가계부채 억제 정책에 편승해 고금리 장사에 몰두한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 당국은 내년에도 가계부채 증가세를 틀어막기 위해 은행별로 가계 대출 총량 한도를 정해줄 계획이다. 이에 따라 대출 문턱은 높고 금리는 비싼 ‘대출 빙하기’가 내년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가계부채 관리 명목으로 은행 대출금리 급등

요즘 대출금리는 말 그대로 ‘자고 나면 오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는 5%대 중반에 이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직후인 8월 말과 비교해 두 달 남짓한 기간에 1%포인트가량 뛰었다. 은행권이 적용하는 신용대출 평균 금리 상단은 9월 말 기준으로 6.68%까지 올라 7%에 가까워지고 있다. 신용대출도 마찬가지다. 시중은행 마이너스 통장의 경우 2%대 금리가 거의 사라져 신용등급 1~2등급도 최고 3.6%대 금리를 물어야 한다.

대출금리 급등은 지난 8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시중 금리가 오른 것이 배경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최근 시중은행들은 급여 계좌 이체, 신용카드 사용 등에 따른 우대 금리 혜택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추가로 올리고 있다. 재량껏 0.1~0.7%포인트를 적용하던 ‘금리 할인’을 상당 부분 없애버린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조이라는 압박이 심하다 보니 결국 물건값(대출금리)을 올리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마을금고와 같은 상호금융회사의 주택담보대출금리가 시중은행들보다 저렴해지는 ‘가격 역전’ 현상마저 나타났다. 최근에는 금리 급등에 대한 불만이 치솟으면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지난 4일 올라온 ‘은행의 가산금리 폭리를 막아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에는 하루 만에 6000명이 동의했다.

◇은행별로 대출 한도 목표치 정한다

가계부채 증가세 억제에 골몰하는 금융 당국은 금리 급등을 묵인하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3일 “앞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생각하면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이 확대되는 그런 시대가 계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고 위원장의 발언을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 인상을 눈감아주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로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는 대출금리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대출 이자의 고공 행진은 내년까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 당국이 내년 가계대출 증가 폭을 4~5% 이내로 억제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계부채 증가율 목표치를 은행별로 차등 적용해 압박을 가할 예정이다. 가계대출을 A은행은 4%, B은행은 5%만 늘리기로 한도 목표치를 각자 정해준다는 것이다. 기존에 금융 당국이 은행권, 여신업계별로 증가율 목표치를 제시하면 각 금융회사가 이를 고려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던 것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조치다.

대출금리가 급등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예금금리가 오르는 속도가 더디다는 불만도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 은행의 1년짜리 정기 예금 평균 금리는 지난 8월 1.16%였다가 9월 1.31%로 0.15% 오르는 수준에 그쳤다. 금융위 관계자는 “원래 예금금리가 대출금리에 비해 3개월 정도 늦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며 “지금은 그냥 지켜보고 있지만 내년 초부터는 예금금리 인상에 인색한 은행들에는 압박을 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국내 시중은행들이 당국의 보호 아래 사실상 독과점 체제에서 예대마진으로 손쉽게 이익을 내는 특성을 고려해 금융 당국이 지나친 금리 인상에는 적극 개입해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